[수 필]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수 필]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by 운영자 2017.12.08
지난가을 우리 고장에 유명 소프라노 가수가 온다고 하여 지인과 함께 구경을 갔다. 실내공연이 아니고 호숫가 잔디밭에서 하는 야외공연이었다.그런데 시간에 임박해서 가는 바람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잔디밭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는 벌써 가득 차 있었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선 채로 공연을 봐야 할 형편이었다. 무대가 가수의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멀었지만 다행히 그 좌우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람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함께 간 지인은 앉을 곳을 찾아 인파를 뚫고 계속 무대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마도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물었다.
“앞쪽에 자리가 있던가요?”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보긴 했는데, 참 기가 막힌 영감이 있더구먼.”
지인이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복잡한 판에 빈자리를 잡아놓고는 안 비켜주려고 하잖아.”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혹시 자리가 있나 하고 무대 가까이 가보니, 과연 빈 좌석 하나가 눈에 띄는데, 가방이 하나 놓여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옆의 노인에게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하고 물었더니, “자리 있어요!”하면서 가방을 치워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인은 노인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군중이 서있는 것을 빤히 보면서 당당히 빈자리를 점거하고 있다니! 그래서 “오면 비켜드릴 게요.”하며 가방을 치우고 앉았단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저런! 형이 아니었더라면 계속 빈자리로 남아 있었겠네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그렇게 자기 욕심만 차려서야 되겠는가?”
생각할수록 노인의 태도가 괘씸하더라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새삼 나이가 들수록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면 젊은 사람보다 세상을 많이 살았다는 뜻인 만큼, 생각하는 폭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이기심을 버리고 아량을 베푸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다소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넓은 도량으로 이웃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주고, 좀 힘들더라도 누구의 보따리 하나라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역시 나이 든 분은 다르구나!’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존경은 아니더라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가 쓴 『나이듦의 지혜』라는 책을 보면 노인의 특징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인내심이 사라지는 것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조그마한 불편함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계한다.
“자신의 노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무엇무엇을 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하는 횟수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는지를 조사해보면 간단합니다.
‘어떤 도움을 받아 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노인’된 사람이 지녀야 할 고귀한 정신이 아닐까요.”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손자들을 만날 때면 으레 용돈을 주시곤 했다. 당신은 시골에서 못 먹고 못 입고 살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것을 손자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세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하고 만류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당신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받기보다는 뭔가 해주고 싶어 한 어머니의 ‘고귀한 정신’을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음악회에서 노인이 가방을 치워주며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예, 어서 앉으세요. 누가 온다고 해서 자리를 잡아놨습니다만 언제 올지 모르겠네요. 무료공연에 자리 임자가 따로 있나요? 돈 주고 산 자리도 아니고, 먼저 앉으면 임자 아니겠어요?”
잔디밭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는 벌써 가득 차 있었고,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선 채로 공연을 봐야 할 형편이었다. 무대가 가수의 얼굴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멀었지만 다행히 그 좌우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관람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함께 간 지인은 앉을 곳을 찾아 인파를 뚫고 계속 무대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마도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물었다.
“앞쪽에 자리가 있던가요?”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보긴 했는데, 참 기가 막힌 영감이 있더구먼.”
지인이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복잡한 판에 빈자리를 잡아놓고는 안 비켜주려고 하잖아.”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혹시 자리가 있나 하고 무대 가까이 가보니, 과연 빈 좌석 하나가 눈에 띄는데, 가방이 하나 놓여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옆의 노인에게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하고 물었더니, “자리 있어요!”하면서 가방을 치워주지 않는 것이었다. 지인은 노인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군중이 서있는 것을 빤히 보면서 당당히 빈자리를 점거하고 있다니! 그래서 “오면 비켜드릴 게요.”하며 가방을 치우고 앉았단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저런! 형이 아니었더라면 계속 빈자리로 남아 있었겠네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그렇게 자기 욕심만 차려서야 되겠는가?”
생각할수록 노인의 태도가 괘씸하더라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새삼 나이가 들수록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면 젊은 사람보다 세상을 많이 살았다는 뜻인 만큼, 생각하는 폭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이기심을 버리고 아량을 베푸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다소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넓은 도량으로 이웃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주고, 좀 힘들더라도 누구의 보따리 하나라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역시 나이 든 분은 다르구나!’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존경은 아니더라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가 쓴 『나이듦의 지혜』라는 책을 보면 노인의 특징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인내심이 사라지는 것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조그마한 불편함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계한다.
“자신의 노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무엇무엇을 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하는 횟수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는지를 조사해보면 간단합니다.
‘어떤 도움을 받아 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노인’된 사람이 지녀야 할 고귀한 정신이 아닐까요.”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손자들을 만날 때면 으레 용돈을 주시곤 했다. 당신은 시골에서 못 먹고 못 입고 살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것을 손자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세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하고 만류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당신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받기보다는 뭔가 해주고 싶어 한 어머니의 ‘고귀한 정신’을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음악회에서 노인이 가방을 치워주며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예, 어서 앉으세요. 누가 온다고 해서 자리를 잡아놨습니다만 언제 올지 모르겠네요. 무료공연에 자리 임자가 따로 있나요? 돈 주고 산 자리도 아니고, 먼저 앉으면 임자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