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국가유공자의 부끄러움

국가유공자의 부끄러움

by 운영자 2014.09.02

우리 역사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수난을 겪었다. 그 안에서 나라를 지켜온 조상에 경의를 표하지만 한편으로는 만만한 한반도 소국의 빈약한 조상들이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고구려시대를 제외하고는 천년의 사대를 해온 나라에는 기득권인 사대부들은 잘 먹고 잘 살지만 백성들은 노예처럼 일하고 빈곤하게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병사와 장수들은 나라를 위해 셀 수 없이 죽어갔고 그때마다 나라에서는 사당을 지어 그들을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벼슬의 칭호를 올려 유족들에게는 녹봉을 주고 병사들에게는 세금을 탕감해 주었다고 한다.

식민지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또 동족의 비극인 전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폭정과 폭압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희생당하고 항쟁한 유족과 당사자들이 트라우마를 겪으며 지금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을 국가유공자로 칭하며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각 시군마다 현충탑을 세워 그 당시 조국의 비극을 상기시켜 후손들에게 잊지 말고 애국심을 함양시켜 되풀이 되는 역사에 경각심과 조상의 얼을 배우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논어에 수기치인(修己治人, 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 군자의 두 가지 기본 과업)이란 성어가 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지도자라고 칭하지만 과연 그들은 역사관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조상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대륙에 사대를 했던 시대에는 수천 명의 공녀와 수만 석의 공물 그리고 전마들을 대국에 보내며 군신의 예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일관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놈들이 그들의 공적을 세우기 위해 수만 명의 조선인들을 죽여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갔던 수모와 목공, 도자기공, 처녀, 아이들을 끌고 가 노예로 삼았으며 식민지시대에는 조선인을 징용으로 끌고 가서 2차 대전 총알받이로 이용했으며 처녀들은 위안부로 삼아 노예처럼 부렸던 사실을 그들은 허구인 소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외국으로 조기 유학한 학생들은 조국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어 그들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층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철저하게 외국의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자신의 이익만 배워온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왜 남북통일을 해야만 하는지 동고동락 공존하는지 인간과 사회, 자연과 배려를 위해서는 역사를 통해서만 깨우쳐진다.

정치인과 지도자는 역사를 배워 자학하고 반성할 줄도 알아야한다.

순천에는 30여 년이 된 오래되고 낡은 현충탑이 죽도봉공원을 1km 지나서 한쪽 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학생들도 올라가기 힘들지만 80세가 넘은 6·25참전 노병들은 기념 행사 때마다 참석하기 힘들어 한다.

너무 멀어서 접근성이 떨어지고 장소도 협소해 국가기념식을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탑 자체도 너무 오래되어 갈라지고 깨져, 새롭게 단장되고 관리가 잘된 타 지역에 비해 너무나 방치한 느낌이 들어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당선된 국회의원과 시의원 그리고 시장, 공무원들은 현충탑 앞에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직자로서 다짐을 맹세하건만 역사관이나 국가관으로 공무를 시행하는 자질이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수차례 보훈단체에서는 이전 문제를 직언 했건만 시원한 ‘립서비스’만 했지 실행은 갖은 구실을 만들어 회피로 일관했다.

이제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국가유공자들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

희생자들이 있음으로써 오늘의 풍요와 인권과 안위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새롭게 이전해 잘 정돈된 현충탑을 보면서 희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기념해 미래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들에게도 고귀하고 훌륭한 선열이 있음을 상기시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존감을 높여야만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