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건축에서 붕괴까지
숭례문, 건축에서 붕괴까지
by 운영자 2008.02.12
지난 10일 밤~11일 새벽 사이에 불타버린 숭례문은 1962년 12월20일 국보 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재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8개 문 중 성곽의 정문이다. 남쪽에 있어 남대문이라고도 불린다. 현존 국내 성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제일 오래 됐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해 3년 뒤인 태조 7년에 완공됐다.
현 건물은 세종 29년(144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1961~63년 해체 수리 작업 때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479년(성종 10년) 외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의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지봉유설’은 숭례문 현판을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이 썼다고 전하고 있다.
1907년 일제가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허물고 주위에 도로를 만들었다. 현재의 광장은 2005년에 조성된 것이다.
2006년 3월, 100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으며 1층만 관람할 수 있었다.
[ 기사제공: 뉴시스 ]
조선시대 서울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8개 문 중 성곽의 정문이다. 남쪽에 있어 남대문이라고도 불린다. 현존 국내 성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제일 오래 됐다.
숭례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해 3년 뒤인 태조 7년에 완공됐다.
현 건물은 세종 29년(144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1961~63년 해체 수리 작업 때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479년(성종 10년) 외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의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지봉유설’은 숭례문 현판을 세종대왕의 큰 형인 양녕대군이 썼다고 전하고 있다.
1907년 일제가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허물고 주위에 도로를 만들었다. 현재의 광장은 2005년에 조성된 것이다.
2006년 3월, 100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으며 1층만 관람할 수 있었다.
[ 기사제공: 뉴시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