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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바느질 공예가 최은숙씨

장애인 바느질 공예가 최은숙씨

by 운영자 2015.04.28

“바느질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통로”돌 무렵 앓은 뇌성마비로 지체장애 2급
바느질강사 활동 … “바느질로 세상의 빚 갚는다”
첫 여성장애인연대 꾸려 … 소외된 장애인 목소리 담아내
바느질과 깊은 사랑에 빠져 백년동거를 꿈꾸는 최은숙씨. 바느질 공예가이자 강사인 그녀의 이름 앞에는 ‘장애인’이라는 수식이 하나 더 붙는다.그녀는 돌 무렵 뇌성마비를 앓은 뒤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 됐다.

“강원도 삼척 도계가 고향인데요. 순박한 시골 마을이어서 그랬을까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늘 제 가방을 들어줬고 비 오는 날이면 선생님이 엎어서 집까지 데려다주시고는 했어요. 장애인이라 겪는 차별을 모르고 자랐죠.”

때문에 그녀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고‘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할 수 없다’는 꼬리표도 되지 않았다.

한복 배우며 바느질 첫 인연
재수까지 했지만 대학을 가지 못했다. 뭘 할까 둘러보던 차에 집 옆 한복집 아이의 공부를 봐주며 한복 짓는 일을 배우게 됐다.

그것이 바느질과의 첫 인연이었다.

“그런데 신기해요. 한 3년 바느질을 배우다 엄마 고향인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그 집 지하에 또 한복집이 있었어요. 바느질과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봐요.”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늘 곁에 바늘을 두고 벗삼으며 그 인연을 필연으로 이어가고 있다.

서른 살 결혼 이후 남편의 고향인 순천에 내려온 그녀는 이력서 한장을 들고 순천 YWCA를 찾았다.

“순천 YWCA가 막 생겼어요. 그런데 교육 과정에 양재반이 있더라고요. 전 한복이랑 양재 자격증이 있으니 강사로 해볼 만하겠다 생각했어요.”

스스로 “새로운 일을 잘하는 스타일”이라는 그녀는 이후 바느질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고, 순천 YWCA와 평생학습관을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바느질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바느질은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가 됐고, 많은 사람들과의 귀한 인연을 촘촘히 꿰매줬다.

여성장애인 권익 위한 모임 만들어
그 가운데 가장 보람있는 것 하나가 순천여성장애인연대를 만든 것.

“처음 여성장애인 9명이 바느질 소모임을 하다, 장애인들이 모여 어려움도 즐거움도 나누는 ‘장애인쉼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그렇게 추진하게 된 것이‘여성장애인연합’이에요.”

이후 그녀는 목포며 서울 등 장애인 단체를 찾아다니며 더 효율적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담아내는 일에 열중했고,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치며 지난해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 순천지부를 출범시켰다.

바느질로 세상 빚 갚는다
몇 년 동안 장애인연합 일을 하며 바느질과 소원했던 그녀는 올해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바느질과 더 가까워졌다.

지난달 순천북초등학교 앞에 바느질공방 ‘큰돌’을 차리며 그 결심을 실현시켰다.

“바느질은 저를 일으켜 세워줬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고요. 그동안 사람들에게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바느질로 세상의 빚을 갚으려고요.”

그녀는 가장 잘하는 바느질로 세상에 진 빚을 갚을 계획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무료 바느질 강습’이 그 계획 중 하나.

그렇게 바늘과 함께 늙어가길
“바느질을 못하게 되면 슬플 것 같아요.”

그녀에게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 휴일도 따로 없다. 바느질을 안 하는 때가 쉬는 시간일 뿐.

한번 바늘을 잡으면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도 모른다. 손 마디마디가 뻐근해져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다, 문득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나’싶다가도 이내 잊고 다시 바늘을 쥔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바느질은 1순위”라고 말한다. 가족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녀의 꿈은 이렇게 바느질을 하며 그렇게 바늘과 함께 늙는 것이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