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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예가 금산 양계승 “흙과 물과 불, 도예의 길 함께한 친구”

<인터뷰> 도예가 금산 양계승 “흙과 물과 불, 도예의 길 함께한 친구”

by 운영자 2015.12.09

전통 자기 재현 너머 새로운 작품 창조 ‘화두’
‘흙은 나의 숙명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이었다. 마침내 손 위에 얻어진 그릇 하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독한 도예의 길을 함께 해준 친구며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도자기 가운데 다기(茶器)를 화두처럼 붙들고 정진해온 도예가 금산 양계승(57·사진) 선생. 그는 고독한 도예의 길을 34년째 걷고 있다.

그 길에 흙과 물, 불이 친구가 되고, 완성된 그릇 한 점이 희망이 된다.

양계승 선생이 도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20대 초반인 1982년 마산에서 우연히 도자기를 빚는 모습을 보고는 ‘아, 나는 다른 것 말고 이걸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그 길로 그는 한겨울에도 비닐덮개 하나가 지붕이 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도자기를 배웠다.

3년 동안 월급 한푼 못 받았지만 만들수록 재미가 있었고,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길은 실력을 키우는 것 하나라는 오기도 생겼다.

그렇게 흙의 습성부터 불의 성질까지 열심히 도자기 배우기를 몇 년. 그는 도자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주말이면 무작정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가방 안에 담아 부산이며 울산, 포항의 전통다원을 찾아 작품을 보여줬다. 그의 작품은 인기가 꽤 있어, 주문까지 받아올 정도였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어요. 만드는 재미가 있었고,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릇 하나,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은 도예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1985년 그는 금산도예라는 어엿한 이름을 걸고 도예공방을 열었다.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했다. 그러다 전시회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헛헛한 마음의 근원을 찾았다.

‘내가 연구에 소홀했구나.’

2000년 첫 전시회를 앞두고 그는 그저 다기를 만들기만 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어떻게’를 고민했고, 여러 시도 끝에 그 고민의 결과를 냈다. 수십 수백 가지 유약의 성질을 파악해 자기에 반영했고, 자기의 모양과 새겨 넣은 문양들도 다양화했다.

마산에서의 전시회 이후 서울을 비롯해 일본, 호주, 스위스 등의 전시를 이어간 것은 그 방증이다.

“도자기하면 청자, 백자 하면서 전통의 복원과 계승을 먼저 얘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그 시절의 것을 재현하거나 복원하는데 그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계승 선생은 “전통을 바탕으로 요즘의 기호와 경향에 맞게 도자기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것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때문에 순천 상사면 마륜의 작업실 ‘금산도예’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또 도자기를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한 도자기 강의도 계획 중이다.

양계승 선생은 “보성이나 제주도, 하동 등 호남에서만 우리 차의 60%가 생산되지만 그에 맞는 다기나 다도 등의 발전은 더딘 편”이라며 “차와 관련한 문화예술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예가로서의 몫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양계승 선생은 2003년 경남공예대전 장려상을 시작으로 전라남도 공예대전 우수상, 대한민국 공예대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2년에는 전통문화예술협회 한국명장 제 20호로 지정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