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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마지막 염전 지키는 유동만씨

순천 마지막 염전 지키는 유동만씨

by 운영자 2016.03.25

“건강 허락하는 날까지 소금 꽃 피우고파”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조선 제14대 왕 선조가 왕자들의 ‘슬기’를 시험코자 던진 질문에 꿀, 고기 등 다양한 답이 나왔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 든 답은 ‘소금’이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도 소금 없이는 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답한 왕자가 훗날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이다.

유동만(63·사진)씨 또한 그와 같은 생각으로, 순천의 마지막 염전을 지키고 있다.

별량면 동송리.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순천에 남은 단 하나의 염전을 만날 수 있다.
4000여 평에 이르는 이곳 염전에서 유씨는 아내와 함께 소금을 만들고 있다.

“염부로는 한 10년쯤 됐지.”

순천 별량면 토박이로,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다는 유씨는 10여 년 전, 품앗이로 처음 염전 일을 접했다.

마을 어르신을 도와 하던 일을 직접 도맡아 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노화로 인해 어르신이 더는 염전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다.

이곳에서 유씨는 여름에는 천일염을, 겨울에는 ‘자염(煮鹽)’을 만들며 많게는 한 해 1500가마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천일염제와 달리, 갯벌에서 염도를 높인 바닷물을 끓여내는 방식의 한국 전통 소금 ‘자염’은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까다로운 제조과정,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점에서 국내 생산지는 손에 꼽는다.

유씨가 말하는 자염 1톤을 얻어내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25일. 20일 이상 염도를 높인 바닷물을 대형 가마에 넣고 2~3일간 쉴 새 없이 끓여내야 한다.

온도를 높이면 더 많은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반면, 미네랄 성분이 죽는 탓에 유씨는 이 시기만큼은 아내와 교대로 잠을 청하며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소금이 눌어붙지 않게 수시로 저어준다고.

유씨는 천일염이든 자염이든 잘 만들어낸 소금은 끝에 단 맛이 감돈다며 이러한 ‘좋은 소금’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염전에 물을 대고 빼는 과정을 반복하며 공을 들인다. 하지만 비라도 오는 날에는 애써 올린 염도가 희석돼 그 간의 고생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이처럼 염부는 뜨거운 태양 아래 구슬땀을 흘리고, 비로 가슴을 적신다.

“다슬기를 잡으러 다니던 내 어릴 적만 해도, 이 일대가 다 염전이었어. 몇 개가 아니라 수십 개. 1960년~1970년도가 전성기였지. 신안 다음으로 염전이 제일 많았으니까.”

그러나 노동 강도가 높은 만큼 나이가 많아 그만두거나, 돈벌이가 안 돼 문을 닫는 염부들이 늘어나면서 염전은 하나씩 논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유씨의 염전은 순천에 남은 마지막 염전이 됐다.

유씨의 바람은 땀으로 일궈낸 좋은 소금의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애용해주는 것. 그리고 순천 염전의 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자식들은 모두 타지에서 일하고 있고, 힘든 염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

다만,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유씨는 그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곳 염전에서 뜨겁게 소금 꽃을 피워낼 작정이다.

[순천광양교차로 /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