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6ㆍ25 참전유공자 박정재옹

6ㆍ25 참전유공자 박정재옹

by 운영자 2012.06.25

“그 아픈 전쟁을 어찌 잊어”
6.25 상처 딛고 반드시 평화 통일 이뤄야
“못 잊죠. 우리는 못 잊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요.” 1950년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박정재(80ㆍ순천용당동)옹. 그는 사람들에게서 6.25 한국전쟁이 잊히는 것이 그저 안타깝다.

지난달부터 보훈지청에서 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보훈특강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재옹은 학생들이 6.25를 모르고 있는 사실에 깜짝 놀랐단다.

“몰라도 너무 몰라요. 보훈특강 가서 학생들한테 6.25가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일본한테 해방된 날’, ‘일본이 침략한 날’처럼 참 기막힌 답이 나와요.”

박정재옹은 “6.25 한국전쟁을 모르면, 그 뼈저린 아픔을 모르면 자주국방의 중요함도 지나치기 쉽다”고 덧붙인다.

1950년 진주사범학교 다니던 박 옹은 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 순천으로 내려왔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9.28 서울 수복(6ㆍ25전쟁 과정에서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9월 28일 탈환한 일) 소식을 듣고 학교로 돌아가던 길에 잡혀 그 길로 군인이 됐다.

“총ㆍ 무슨 총을 잡아 봐요ㆍ 다 그랬어요. 나뿐만 아니라 다 총 한번 못 잡아본 사람들이 졸지에 군인이 돼 총을 겨눴지.”

생전 처음 총을 잡고 강원도 2사단, 피 튀기는 최전방에서 꼬박 2년을 싸웠다.

“다른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 적이다 싶으면 그저 용감하게 싸우는 수밖에.” 박 옹은 그 시절의 자신을 “참 용감했다”고 표현했다.

용감하게 싸웠지만 가슴이 무너지는 일도 참 많았단다.

“방금 전까지 나와 함께 싸우던 전우가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버리는 것, 그것 참 마음이 아프죠. 어디 그뿐인가. 걷다 보면 민간인이 죽어있는 모습을 참 많이 봐요. 한번은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우물 안에 죽은 사람들이 산처럼 쌓였더라고. 지금도 그 생각하면 참….”

말끝을 흐리는 박옹은 마음에 새긴 상처 이외에도 몸에 6.25의 상처를 새겼다. 1952년 10월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한 것. 그 일로 더 이상 몸으로 싸울 수는 없었지만 늘 마음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이념은 몰랐어도 반드시 나라는 지켜야겠기에.

박옹의 가슴 속에는 지금도 ‘나라사랑’이라는 네 글자가 살아있다. 서로 죽고 죽이며 헤어지며 피눈물로 지킨 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도 없지. 안 겪어본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6.25를 잊지 말고 그렇게 나라를 지켜준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제 나라를 지킬 힘은 제 나라 국민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옹은 통일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통일ㆍ 비록 우리가 싸워 둘로 갈라졌지만 통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 피를 흘리지 않는 통일이어야 해요. 다시는 6.25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피를 흘리는 일은 없어야지. 평화적인 통일로 이뤄야 해요.”

“조국은 하나”라는 말을 덧붙이는 박옹은 이제 62년 전의 상처를 보듬고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