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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에 화랑무공훈장 되찾은 고흥 유종식 옹

61년 만에 화랑무공훈장 되찾은 고흥 유종식 옹

by 운영자 2012.10.04

“이제라도 화랑무공훈장 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
“6·25전쟁의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훈장을 되찾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6·25전쟁 당시 화랑무공훈장 ‘가수여증’을 받았지만 전쟁통에 분실한 탓에 훈장을 받지 못했던 예비역 일등상사가 61년 만에 훈장을 되찾았다.

육군 31사단은 2일 사단 사령부에서 열린 건군 제6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예비역 일등상사 유종식(83·고흥군 도양읍) 옹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유 옹은 지난 1949년 1월 15일 군에 입대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5사단 공병대 소속으로 서울 함락을 마지막까지 저지했던 미아리 전투와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경북 영천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또 7사단 공병대대로 소속을 바꾼 후에는 평양을 거쳐 평안남도 덕천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패퇴했던 덕천지구 전투,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졌던 강원도 양구지구 전투에 이르기까지 6·25전쟁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 전투마다 참전해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공병 주특기를 가졌던 유 옹은 소대 선임하사로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에도 선두에서 장애물을 개척하거나 지뢰를 매설하는 등 생사를 수없이 넘나들었다.

유 옹은 지난 1951년 7월 양구지구 전투 유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당시 훈장은 명함 크기의 작은 종이의 가수여증으로 나중에 실제 훈장증서와 정장을 교부하겠다는 증서였으나 유 옹이 격전의 와중에 이를 분실했다.

1955년 제대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국가에 훈장 발행을 요청했으나 가수여증이 없는데다 당시에는 전쟁 기록물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 육군에서 병적기록부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전사자 유가족 찾기 테스크포스(TF)’가 발족되면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도 진행돼 유 옹의 기록이 발견됐다.

유 옹은 “이제라도 훈장을 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31사단 김병규 중사(6·25무공훈장 및 유가족 찾기 담당관)는 “전쟁 당시 기록이 1968년 주민등록법 시행 이전의 것이라 대상자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드린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 옹처럼 아직 무공훈장을 받지 못한 참전 유공자는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3500여 명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