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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진혼곡

다뉴브 진혼곡

by 이규섭 시인 2019.06.14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본 건 5년 전 2월 하순이다. 유럽의 3대 야경이란 소문대로 황홀하다. 화려한 불빛이 중세 건축물에 예술의 옷을 입힌다.세체니 다리의 조명은 은빛 구슬을 꿰어 놓은 듯 은은하다. 겔레르트 언덕 어부의 요새 원추형 탑도 하얗게 분을 발랐다.

야경의 하이라이트인 국회의사당이 강물에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운다. 오렌지 속살처럼 상큼하고 맛있는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다음 날 프라하를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체코 항공기가 러시아 상공을 통과할 무렵 엔진 고장으로 모스크바 공항에 불시착했다.

승객 대부분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공항에 내렸으나 언제 어느 비행기로 떠날지 모른 채 미확인 정보만 미세먼지처럼 떠돌았다. 엔진을 수리한 뒤 그 항공편으로 다음날 떠난다고 한다.

항공사 측에서 제공한 공항 부근 호텔에 투숙했다. 그해 1월부터 발효된 한-러 비자면제협정 덕을 톡톡히 봤다.

무사히 귀국했으나 얼마 동안 공중에 붕 떠있는 듯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리고 한 달 보름 뒤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그때 승선한 유람선은 이번에 침몰한 허블레아니호와 비슷한 규모다. 당시 비상시 안전장치 안내를 듣지 못했다. 구명조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설마 사고가 나겠는가.” 무방비 상태다.

사진 찍기 좋은 위치에 끼리끼리 모여 인증샷 날리기 바쁘다. 유람선에서는 승객에게 와인, 맥주, 음료수, 물 가운데 한 가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선상에서 술을 팔고 마시는 건 합법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안내로 이곳 명물 와인 ‘또까이’를 주문해 마신 기억이 난다.

다뉴브강 폭은 400m로 한강의 4분의 1 정도에 불가한데 유람선이 스치듯 지나간다. 200만 명이 채 안 되는 부다페스트엔 한해 2800만 명이 찾는 관광지다.

세체니 다리를 중심으로 부다 지구는 왕궁, 마챠시 교회 등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다. 페스트 지구는 중세 이후 상업과 예술의 도시로 성장했다.

다뉴브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를 거쳐 부다페스트로 흘러든다. 다뉴브(Danube)는 영어식 표현이고, 독일어로는 도나우(Donau),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라고 부른다. 2,850㎞의 강줄기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를 지나 흑해로 빠진다.

시인 김춘수가 1959년에 지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군 탱크에 무참히 짓밟혀 죽은 한 소녀의 죽음을 애도한 긴 시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 앞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고 읊었다.

시대 배경과 사연은 달라도 유람선 사고 명단엔 꽃봉오리 같은 소녀가 있어 가슴이 더 저리다. 침몰 13일 만에 유람선을 끌어올렸지만 아직 찾지 못한 수중고혼의 주검이 있어 안타깝다. 슬프지 않은 죽음이란 없다.

다뉴브강은 가슴 아픈 사연들을 품은 채 무심히 흐른다.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부르는 ‘아리랑’ 선율이 하늘길로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