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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5주년 학도병 출전 고병현 씨

6·25 전쟁 65주년 학도병 출전 고병현 씨

by 운영자 2015.07.16

“이땅에 전쟁은 절대 안돼”

율촌고등공민학교 2년 자원 입대
군복·군화·철모 대신 교복 차림
군사 훈련도 일주일여 남짓 전부
3년 여 복무 … 포탄 터져 머리 부상
고생 하다 죽어간 전우‘마음 아파’
“어떤 나라·상황에도 전쟁 없어야”

‘이 목숨 나라에 바침. 무진생 고병현.’
율촌고등공민학교 2학년 고병현이 6.25전쟁 발발 열흘 뒤인 7월 10일 참전을 앞두고 새하얀 종이에 검붉은 피로 쓴 다짐이다.올해로 여든여덟. 많은 기억들이 안개에 덮인 듯 희미해져가지만 1950년 그날의 기억만은 또렷하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였어요. ‘어서 전쟁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공부하자!’ 그 생각이 아니면 하루하루를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1948년 일어난 여순 사건으로 남과 북, 좌익과 우익 그리고 이념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이들은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고 손자였고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고병현씨는 혈서를 쓰고 형 대신 전쟁에 가겠다고 자원을 했다. 그날 아침 등굣길, 첫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되던 형수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월 13일. 고병현씨를 비롯해 여수·순천·광양·보성·고흥·강진 등 전남지역 17개 학교에서 모인 183명은 국군 5사단 15연대에 소속, 나라를 위해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전쟁은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대로 군수품이 보급 되지 않아, 평소 신던 낡은 운동화가 군화가 됐고 학생모가 철모였다. 제대로 된 총도 없는 군사 훈련도 일주일여 남짓이 전부였다.

군인이었지만 군번도 없었고, 무거운 M-1 총 한 자루가 적과 싸울 무기의 전부였다. 주먹밥 한 덩이가 한끼 식사였고, 딱딱한 맨바닥과 거적 하나가 잠자리였다.

“우리의 첫 전투는 화개장터에서였습니다. 주먹밥 한 덩이지만 아침도 채 먹기 전에 인민군과 맞닥뜨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7월 25일 이른 아침, 국군도 경찰도 모두 퇴각해 마을 사람 몇몇만 남은 화개장터에서 학도병들은 진주를 점령하기 위해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오던 인민군 최정예 6사단 선봉대대와 맞서 싸웠다.

화개전투에서 학도병 3분의1이 넘는 70여 명을 잃었지만 이들은 하동-진주-마산을 거쳐 부산 점령을 목표로 진격하던 북한군의 진로를 1주일가량 지연시키는 공을 세웠다.

“눈앞에서 친구 하나가 머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어요.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손가락으로 피나는 부분을 막으면 친구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전쟁터에서의 3년은 거의 그랬지.”

이후 1953년 제대까지 고씨는 진주촉석루전투, 마산진동사수전투를 비롯해 팔공산전투, 영천전투 등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싸웠고 살아남았다. 전장에서 포탄이 튀며 머리에 부상을 입는 ‘영광의 상처’도 얻었다.

수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매순간 죽음의 공포에서는 초연할 수 없었다.

“함안전투에서 등에 폭탄을 메고 전차에 뛰어들어 전차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임무 투입 전에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잘라 노란 봉투에 담고, 고향 주소를 써 붙이라는데 그땐 정말 ‘어머니 아버지,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가 봅니다’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는 고씨는 “어떤 나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듯 몇 번을 되뇌인다.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진 전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더위와 추위, 배고픔에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고생만 하다 갔으니…. 학도병에 대해 잘 모르고, 잊히는 것도 안타깝기는 해요. 하지만 우리를 몰라줘도 괜찮아요. 다시는 이 땅에, 이 세상에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고병현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대, 전쟁은 안된다”고 말을 맺는다.

한편 지난 13일 여수에서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초기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해 나라를 지키다 의롭게 산화한 어린 생명들의 넋을 추모하는‘전남지역 학도병 출정 6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