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각장애인 안마사 지희정씨
[인터뷰] 시각장애인 안마사 지희정씨
by 운영자 2015.08.07
아프고 지친 사람들 어루만지며 기운 ‘팍팍’
23살 교통사고로 장애 입어
영암은광학교서 이료재활 배워
장애인·어르신 건강 살피는‘보람’
23살 교통사고로 장애 입어
영암은광학교서 이료재활 배워
장애인·어르신 건강 살피는‘보람’
“엄마, 지난번에 내가 알려드린 운동 했어, 안했어? 하시라니까 안 하셨구만. 꾸준히 하시면 진짜 다리 덜 아프다니까는!”안마를 해드리는 어르신들에게 스스럼없이 ‘엄마’ ‘아부지’라는 호칭을 먼저 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지희정씨(38).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은 자식 얘기부터 젊은 시절 경험담, 건강 상담까지 속내를 털어놓는다.
“안마는 손으로 몸을 누르거나 두드려서 하기 때문에 ‘기운’이 전해져요. 그래서 서로 친해지고 좋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정씨가 안마 하는 내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까닭이다.
안마를 받는 어르신들에게 ‘이제 안 아프다’ ‘알려준 운동 방법 잘하고 있다’ 얘기를 듣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희정씨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활동을 한 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꿈 많던 희정씨는 23살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사고 후 그녀는 말도 하지 못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3개월 동안은 밤낮 울기만 했어요.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눈물만 나올 수밖에요.”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됐던 건 같은 병원의 환자들과 가족들. 이들은 희정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안팎을 ‘말’로 구경시켰다.
날씨와 풍경, 다른 환자들의 어려운 사정 등 눈이 안 보이던 희정씨에게 이들의 말은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됐다.
“보이지 않고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는 감사하다’ 생각한 것도 그때였어요.”
희정씨는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고 1년 6개월 뒤 불편하지만 걸을 수 있게 됐다. 말문도 트였다. 좌측편마비로 왼팔과 다리가 불편하고, 여전히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제 나는 못할 것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이후 마음의 장애가 없는 희정씨를 사랑하는 남자와 만난 지 3번 만에 결혼을 했고 딸 셋을 낳았다. 평온한 일상이었지만 그녀는 세상을 더 보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그녀는 특수학교인 영암은광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해부생리, 침, 안마, 마사지, 지압, 한방 등을 배우는 이료재활과정 2년을 마쳤다.
아이 둘을 남기고 날마다 순천에서 영암까지 3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힘든 일상이 이어졌지만 즐거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 30분 고속버스를 타야 했어요. 학교에 도착하면 9시 30분. 그래도 즐거웠어요. 차 안에서는 공부를 했어요. 따로 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2년 과정 동안 희정씨는 셋째 예림(5)이를 임신했지만 ‘배우는 재미’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배가 남산만 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다니던 희정씨는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다고.
학교를 마치고 그녀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어르신 등에 안마를 한다.
한 사람당 1시간씩 안마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지만, 건강한 세 아이 예진·예지·예림이와 묵묵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남편 하주환씨를 통해 다시 ‘힘’을 얻는다.
“가족들이 제 원동력이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안 계셔서 저는 늘 ‘가정’을 꿈꿨거든요. 아이들과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면 어때요. 그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남편이 나를 아내라고 하는데요. 그거면 충분히 행복해요.”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움직일 수 없었을 때도 ‘감사’를 생각했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을 때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지희정씨. ‘앞으로도’ 그녀는 행복하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안마는 손으로 몸을 누르거나 두드려서 하기 때문에 ‘기운’이 전해져요. 그래서 서로 친해지고 좋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정씨가 안마 하는 내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까닭이다.
안마를 받는 어르신들에게 ‘이제 안 아프다’ ‘알려준 운동 방법 잘하고 있다’ 얘기를 듣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희정씨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활동을 한 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꿈 많던 희정씨는 23살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사고 후 그녀는 말도 하지 못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3개월 동안은 밤낮 울기만 했어요.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눈물만 나올 수밖에요.”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됐던 건 같은 병원의 환자들과 가족들. 이들은 희정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안팎을 ‘말’로 구경시켰다.
날씨와 풍경, 다른 환자들의 어려운 사정 등 눈이 안 보이던 희정씨에게 이들의 말은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됐다.
“보이지 않고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는 감사하다’ 생각한 것도 그때였어요.”
희정씨는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고 1년 6개월 뒤 불편하지만 걸을 수 있게 됐다. 말문도 트였다. 좌측편마비로 왼팔과 다리가 불편하고, 여전히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제 나는 못할 것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이후 마음의 장애가 없는 희정씨를 사랑하는 남자와 만난 지 3번 만에 결혼을 했고 딸 셋을 낳았다. 평온한 일상이었지만 그녀는 세상을 더 보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그녀는 특수학교인 영암은광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해부생리, 침, 안마, 마사지, 지압, 한방 등을 배우는 이료재활과정 2년을 마쳤다.
아이 둘을 남기고 날마다 순천에서 영암까지 3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힘든 일상이 이어졌지만 즐거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 30분 고속버스를 타야 했어요. 학교에 도착하면 9시 30분. 그래도 즐거웠어요. 차 안에서는 공부를 했어요. 따로 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2년 과정 동안 희정씨는 셋째 예림(5)이를 임신했지만 ‘배우는 재미’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배가 남산만 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다니던 희정씨는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다고.
학교를 마치고 그녀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어르신 등에 안마를 한다.
한 사람당 1시간씩 안마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지만, 건강한 세 아이 예진·예지·예림이와 묵묵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남편 하주환씨를 통해 다시 ‘힘’을 얻는다.
“가족들이 제 원동력이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안 계셔서 저는 늘 ‘가정’을 꿈꿨거든요. 아이들과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면 어때요. 그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남편이 나를 아내라고 하는데요. 그거면 충분히 행복해요.”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움직일 수 없었을 때도 ‘감사’를 생각했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을 때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지희정씨. ‘앞으로도’ 그녀는 행복하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