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어버이날 특집 인터뷰 - 모범어버이 임점남

어버이날 특집 인터뷰 - 모범어버이 임점남

by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 2018.05.10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 내 인생의 보람”
홀로 생계 책임지며 4명의 자녀 양육 ‘헌신’
핵가족화와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가족관계가 소원해진 요즘, 자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보여주며 ‘함께하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임점남(72·사진)씨의 이야기다.

임씨는 한국부인회 순천시지회(회장 최두례)가 어버이날을 기념해 9일 개최한 ‘제29회 모범어버이·행복한다문화가정 시상식’에서 모범어버이로 선정됐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상을 주니 그저 쑥스럽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와 스무살에 첫 아이를 낳았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혼자가 됐다. 이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돼 홀로 아들 넷을 키워냈다.

“아이들 키울 당시에는 서럽다는 생각보다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오로지 ‘애들 밥은 안 굶겨야겠다’ 그 생각뿐이었지.”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자라 결혼 전까지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일이 없던 임씨였기에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첫째 아들이 중학생, 막내가 아직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힐 돈이 필요했기에 임씨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당시 율촌에 살면서 공단에서 일하고, 벽돌공장에도 다니고,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잡아다 내다팔기도 했어. 그때는 신기하게 아프지도 않았어. 아이들도 그랬고.”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밀린 집안일을 했던, 그야말로 ‘밤을 낮으로 알고 산 시절’이었다.

임씨는 아이들이 아팠다면 더 힘들었을텐데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고.

생계를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는 그녀였지만 정작 처녀시절부터 꿈꿔온 ‘미용’ 일은 시작조차 못했다.

결혼 전에는 친정아버지가 걱정된다고 객지에는 보내주지 않아서, 이후에는 일만 하느라 전문적인 미용기술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타고난 솜씨 덕에 아이들의 어릴 적 머리는 모두 본인의 솜씨였다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이루지 못한 꿈보다는 마음만큼 아이들을 뒷바라지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크다는 그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가 가장 보람된다’고 말한다.

“지금은 첫째부터 막내까지 다 가정을 꾸렸어. 둘째 아들 내외랑 살고 있는데 명절이면 식구 열댓명이 모여서 북적북적해. 그거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야.”

남은 바람은 자식내외의 건강과 행복뿐.

“나는 살만치 살았으니까. 자식 내외만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살면 그걸로 끝이지 뭐. 다른 바람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