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전각가 김충렬
기와 전각가 김충렬
by 운영자 2008.09.10
칼끝으로 피워내는 글, 그림 그리고 우주
날마다 같은 시간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삶이 싫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또 내일일 것이 뻔한, 변화 없는 삶이 견딜 수 없었다. 퇴직금 나오는 ‘짱짱한’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85년, 그 길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서예에 몰입했다. 취미가 아닌 ‘프로(professional,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서예가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씨에 취미가 있었거든요. 지금 후회 없어요.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까.”
기와 전각가 김충렬(순천 상사면).
20여년 전 ‘변화’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그는 다시 또 ‘변화’를 위해 화선지와 묵을 젖혀두고 기왓장과 칼을 들었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삶이 싫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또 내일일 것이 뻔한, 변화 없는 삶이 견딜 수 없었다. 퇴직금 나오는 ‘짱짱한’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85년, 그 길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서예에 몰입했다. 취미가 아닌 ‘프로(professional,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서예가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씨에 취미가 있었거든요. 지금 후회 없어요.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까.”
기와 전각가 김충렬(순천 상사면).
20여년 전 ‘변화’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그는 다시 또 ‘변화’를 위해 화선지와 묵을 젖혀두고 기왓장과 칼을 들었다.
“서예를 하다보니 재료의 한계를 느꼈어요.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졌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각이에요.”
그러나 그는 서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나무, 돌, 금옥 등에 글이나 그림 등을 칼로 파고 색을 입히는 전각(篆刻)은 서예가 기본이 돼야 한다. 20여년 동안 쉬지 않고 해온 서예, 그 탄탄한 기초 위에 전각이라는 분야를 더했다.
그의 작품은 기왓장 위 칼끝에서 빚어진다.
“기왓장은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죠. 의식주(衣食住)의 주(住)를 담당한 기왓장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소재잖아요. 그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사용하게 됐어요.”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 켜켜이 세월을 쌓은 기왓장은 견뎌낸 시간에 따라 문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그가 새겨내는 울림은 한결같다.
단단한 기와 위에 그가 아로새기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잃지 말아야 할, 경계해야 할 그 마음들을 남기는 것.
청석재(聽石齋). 그가 사는 집이자 작업실의 이름이다. ‘서걱서걱’ 사시사철 돌 깎는 소리가 나는 집. 오늘도 그 집 앞에는 돌 깎는 소리가 들린다. 기왓장 위에는 꽃이 피고, 글이 쓰이고, 우주가 태어난다.
[ 사진제공 김학수 기자 / 글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
그러나 그는 서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나무, 돌, 금옥 등에 글이나 그림 등을 칼로 파고 색을 입히는 전각(篆刻)은 서예가 기본이 돼야 한다. 20여년 동안 쉬지 않고 해온 서예, 그 탄탄한 기초 위에 전각이라는 분야를 더했다.
그의 작품은 기왓장 위 칼끝에서 빚어진다.
“기왓장은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죠. 의식주(衣食住)의 주(住)를 담당한 기왓장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소재잖아요. 그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사용하게 됐어요.”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 켜켜이 세월을 쌓은 기왓장은 견뎌낸 시간에 따라 문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그가 새겨내는 울림은 한결같다.
단단한 기와 위에 그가 아로새기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잃지 말아야 할, 경계해야 할 그 마음들을 남기는 것.
청석재(聽石齋). 그가 사는 집이자 작업실의 이름이다. ‘서걱서걱’ 사시사철 돌 깎는 소리가 나는 집. 오늘도 그 집 앞에는 돌 깎는 소리가 들린다. 기왓장 위에는 꽃이 피고, 글이 쓰이고, 우주가 태어난다.
[ 사진제공 김학수 기자 / 글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