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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누루미 전문가 정경자씨

꽃누루미 전문가 정경자씨

by 운영자 2012.03.02

“미안해, 꽃아! 나랑 가자!”
오래 전 한참 재미나게 읽었던 책을 들춰보다 반가움에 ‘아’ 작은 탄성을 지른 기억이 한번쯤 있을 듯싶다.어느 가을 꽂아두었던 단풍잎이나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네잎클로버, 한들한들 고운 코스모스 한 송이를 발견하고서다.

곱게 마른 들판의 식물들은 추억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꽃누르미 전문가 정경자(63?순천 영동)씨는 날마다 켜켜이 들판의 크고 작은 식물들과의 추억을 쌓아간다.

꽃누르미는 프레스플라워(press flower) 또는 압화(壓花)라고 하는데, 꽃이나 식물을 말려 아름답게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꽃망울이 팡팡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하는 봄이면 그녀는 마음이 설렌다. 볕이 고와지면 마음은 이미 꽃들 사이로 가 있다.

정경자씨는 새벽 동이 트기 전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오전 11시 이전에 꽃을 채취해야 가장 예쁘고 싱싱한 꽃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 꽃 따러 가는 길에 밥은 사치다. 밥 먹는 동안 꽃들이 다치면 안 된다.

“지금 매화가 피었어요. 오종종 예쁜 것들 만나면 반갑죠.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내 욕심에 막 피어난 생명들을 다치게 하니까. 그래서 말해요. 미안하다고, 나랑 같이 가서 더 오래 예쁜 모습을 간직해달라고요.”

꽃 채취가 끝나면 해찰할 시간이 없다. 예민한 꽃들은 금세 시들어 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채취한 꽃들은 건조 과정을 거친다.

꽃마다 머금은 습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 정도는 건조 기간을 거쳐야 한다. 건조는 자연 건조가 아닌 기계 건조를 시킨다. 그래야 제 색을 잃지 않고 부스러지지도 않는다.

잘 마른 꽃들은 어디에서건 새로운 꽃으로, 작품으로 태어난다. 손거울 뒷면에서, 명함집에서, 목걸이에서, 캔버스 위에서….

“꽃누르미에 한계는 없어요. 어느 것이든 만들 수 있고, 또 어떤 식물이든 꽃누르미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이건 가지를 말려 작품을 만들었고요. 오이를 말려서 만든 것도 있어요.”

정경자씨는 그 무궁무진함이 꽃누르미의 매력이라고 여긴다. 그 무궁무진한 재미를 무궁무진 계속 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풀이 좋고, 꽃이 좋았어요. 꽃이며 풀이며 한다발 꺾어 손에 쥐고 다녔거든요. 엄마는 풀물 든다고 버리라고 해도 끝끝내 안 버릴 정도로 좋았어요.”

어릴 적부터 들판에 난 것들이면 그저 좋아 한동안 바라보았다는 그녀는 이제 그 좋은 것들을 날마다 본다. 그녀에게 겨울은 없다. 사시사철 정경자씨의 곁에는 색색의 꽃과 풀들이 즐비하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hokkk@paran.com ]

사진설명 -코스모스 등 형형색색의 꽃으로 손거울을 만들고 있는 꽃누르미 전문가 정경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