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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갈대를 닮은 허정(虛丁) 장안순 화백

꺾이지 않는 갈대를 닮은 허정(虛丁) 장안순 화백

by 운영자 2014.05.26

<교차로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화예술인 릴레이 인터뷰③>
▲허정 장안순 화백

최근 ‘아! 순천만 바람’이라는 부제로 순천역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장안순 작가를 문화의거리 인근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 우선 ‘허정’이라는 ‘호’가 지닌 의미가 궁금합니다.

‘허정’이라는 제 호는 스승이신 목인 전종주 선생님께 하사받은 것으로, ‘비우는 마음으로 채우고, 한 곳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빌허(虛)’자에 ‘고무래정(丁)’자를 씁니다.

이러한 호대로 살려다보니 작품에도 영향을 받아, 제 작품에는 여백이 많은 것이 특징이죠.

▶ 처음부터 화가를 꿈꾸셨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저는 그저 글씨를 잘 쓴다고만 생각했지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 서예부에 들어갔는데 2학년이 되어 대학입시를 생각하니 서예만으로는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생각하게 됐고 고3이 되어서야 한국화를 만나게 됐습니다.

솔직히 늦었죠. 게다가 순천에는 당시 동양화를 가르치는 입시미술학원이 없었어요. 결국 저는 그해 재수를 했고 이후, 서울로 올라가 구로공단에서 일을 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녔어요.

그렇게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주로 어떤 그림들을 그리셨나요?

처음에는 산, 물을 화폭에 옮겨 담는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렸어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산수화는 시대적 흐름과는 동떨어져 정체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국악인 박동진 선생님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가장 순천적인 것이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순천만 갈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갈대는 특히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갈대가 인간들이 배출한 노폐물을 정화시킨다고 합니다. 갈대 하나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만큼, 갈대를 그려낸 제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치유됐으면 해요.

그렇게 순천만을 주로 한 개인전을 200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23회째를 맞았네요.

▶ 많은 작품을 그리셨는데 그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2개의 작품이 생각나는데요. 먼저,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한 ‘소리’라는 작품. 그리고 수묵화로 새떼를 그려낸 ‘짱뚱어가 날다’라는 작품이 제게는 특별합니다.

특히, ‘짱뚱어가 날다’라는 작품은 에피소드가 있어요.

‘짱뚱어가 날다’는 새떼들이 짱뚱어의 형상을 이뤄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무려 6개월이 걸렸어요. 커다란 종이에 깨알 같은 새를 그려 넣다보니 2~3일을 꼬박 그려도 고작 손바닥 크기밖에 안됐어요.

그렇게 밤샘 작업을 하고 광양에 수업을 다녀오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제 차가 무쏘였는데 그게 폐차될 정도였죠. 그런데도 저는 비교적 말짱했어요. 새들이 지켜주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소리’라는 작품은 초대작가를 목표로 작심하고 그려냈던 작품입니다. ‘짱뚱어가 날다’와 달리 1달 만에 완성했는데 목표했던 대로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기특한 작품이죠.
▲소리 100호.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 선생님 작품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가장 첫째는 자연입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오묘함에 매료되다보면 작품에 정진할 수 밖에 없죠. 둘째는 이러한 제 작품을 좋아해주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응원에서 힘을 얻어요.

그리고 제 화가 인생에 자양분이 되어준 월전미술문화재단 부설 동방예술연구회에서의 수업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그곳에서 석학 이상의 강사들로부터 민속학, 시, 법, 종교, 철학 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든 학문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림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런 배움으로 인해 제 작품도 단순히 보이는 형상 그대로가 아닌 작가의 생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 한국화를 하고 싶지만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로 망설이는 청소년들에게 조언 해주신다면?
“지금이 기회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요즘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취업을 생각해서 너나 나나 디자인을 공부하는데 점점 한국화 를 전공하는 사람이 적어지는 만큼 희소가치가 있어서 더욱 인정받을 거라고 봐요.

용기를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역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보다는 향기 나는 화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화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끊임없이 바람에 흔들리고도 꺾이지 않는 그의 작품 속 갈대를 닮았다.

한편, 장안순 작가는 이란에서 열리는 ‘테헤란 아트페어’, 부산 ‘국제 아트페어’ 출품을 앞두고 있으며, 순천에서는 12월 순천문예회관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교차로신문사/ 이보람 기자 shr5525@naver.com]

*장안순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 여러 미술대전의 심사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