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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문화를 만나다 - 문화예술인 릴레이 인터뷰>⑧

<교차로에서 문화를 만나다 - 문화예술인 릴레이 인터뷰>⑧

by 운영자 2014.10.23

‘종이 위, 삶을 새기다’ 종이조각가 정태전 작가
“작품은 내 삶의 반복되는 물음을 풀어가는 과정”
▲정태전 작가의 펜 칼을 이용한 조각 모습.

‘창조’란 단어는 매우 거창하고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종이조각가 정태전(40·사진) 작가는 생각의 틀을 조금만 벗어난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물이 지닌 친숙함이 특별함으로 변화되는 순간은 그 작은 시도에서 나타난다는 것.

정 작가는 회화의 기본 재료가 되는 종이를 회화가 아닌 조각에 사용함으로써 현재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원래 꿈은 형사였어요.”

정 작가의 유년 시절 꿈은 형사였다. 때문에 고3이 되기 전까지는 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고3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홀로 남겨진 정 작가는 아버지가 싫어하셨던 운동 대신 취미로 해왔던 미술로 진로를 바꿨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 그 단순한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죠.”

정 작가는 누구보다도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93년도에 홍익대학교를 목표로,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3만 원을 들고 상경했어요.

첫 날은 잘 곳이 없어서 노숙을 했어요.”

이후 숙식을 제공해주는 신문 배달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했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하는 한편 학원에서는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다.

“대학원 재학시절 돈이 없어서 작품 재료조차 살 수 없더라고요.”

그때 정 작가는 ‘작가라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로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종이.

입체였던 사과를 둘러싸고 있던 껍질이 칼이 지나감과 동시에 선으로 변하는 모습에 선도 입체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정 작가의 작품의 큰 틀을 이루는 것은 ‘시간’‘반복’‘비움’ 이상 3가지.
▲Falling. 90×90×20 미쥼보드, 아크릴 밀러“현재 ‘Falling’이라는 큰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내안에 빠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죠. 작품 속에서 답을 보여주기 보다는 살아가는 동안 반복되는 물음에 답 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은 반복되는 ‘선’. 이 선은 시간과 함께 작가 자신의 생각과 관념 등을 의미한다.

작업 방식은 ‘미쥼보드’라는 종이 1장에 이야기하려는 형상을 연필이나 펜으로 드로잉 한 후 날카로운 펜 칼을 이용해 그물구조로 자른다. 이후 밀고 당김으로써 입체와 같은 공간의 느낌을 준다.

그 뒤에 거울을 덧대어 허상의 공간을 연출했다.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표면만 존재할 뿐 텅 빈 입체.

그가 말하는 ‘비움’은 작품에도 드러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빛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잘하려는 욕심이 과하면 벽에 부딪치더라고요. 이제는 욕심을 비우고 작업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껴요. 그렇게 얻어진 유연함과 자유로움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의 작품에는 오래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밤과 낮의 전혀 다른 풍경처럼 조명을 더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언젠가는 뉴욕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변화무쌍한 그의 작품처럼 정태전 작가의 앞으로가 매우 기대된다.

*정태전 작가는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조소과를 전공하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순천과 인사동에서 3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베트남-한국 프랜드쉽 특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한 바 있다.

[교차로신문사/ 이보람 기자 shr55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