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자, 웃지들 말고잉~ 준비 됐으면 레디 액션!”

“자, 웃지들 말고잉~ 준비 됐으면 레디 액션!”

by 운영자 2014.10.30

순천영상미디어센터‘노인영상미디어활동’진행
남제동 우물에서 펼쳐지는 그 옛날 추억 이야기


“우리 시누이 시어머니는 어찌나 독한지 밥할 쌀도 조금 내준다대. 또 곳간 문은 손도 못 대게 잠가버린다그만. 그래서 밥이 적아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만 쎄가 빠지게 한다고 글대.”
“짠해서 어찌까잉. 뭔 그런 독한 시엄니가 다 있대?”
“그러고 따지믄 자기 시어머니는 안 그렁께 천만 다행이네.”

누루죽죽한 머릿수건에 광주리를 인 남루한 한복 차림.
우물가에 둘러앉은 배우들이 진지하게 그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감독도, 배우도 모두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다.

영화라고는 찍어본 것은 물론 본 적도 없고, 연기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전부인 어르신들이지만 10번의 엔지(NG)에도 싫은 내색 한번 않는다.

흔히들 영화는 전문가나 젊은이들만 만들 수 있는 걸로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본 것도, 더군다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 노인들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연출을 하고, 배역에 맞는 옷을 갖춰 입고 연기를 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순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한 노인영상미디어활성화 사업 ‘여그, 저그, 우리동네 야그’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 8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노인영상미디어활성화 사업 ‘여그, 저그, 우리동네 야그’ 교육의 결과물로 ‘남제골 우물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화 한편을 만들었고, 지난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열린 제7회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는 더 큰 결과를 이끌어냈다.

영화 ‘남제골 우물 이야기’는 남제동 우물을 무대로 우물가에서 오고갔던 그 옛날 어머니들의 삶을 담고 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도가 있지만, 옛날에는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거든. 새벽 일찍 일어나 우물 물 길어다 보리쌀 씻어서 밥 해먹고 일하고 그랬지.

우물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피어났어. 누구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한다더라, 누구네 아들이 이번에 장가를 간다더라. 동네 소문이며 소식이 다 우물가에 모였다고 하면 돼.”

연출을 맡은 김기자 할머니는 “영화 내용은 실제 우리가 겪고, 했던 일을 담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출을 맡은 이성업·김기자 어르신을 비롯해 시어머니역의 조순자, 며느리 서인순, 마을아낙 김순심·한기숙, 음악 담당 조순심, 촬영 감독 추정임 어르신까지 8명의 어르신들은 순천영상미디어센터와 함께 주제 선정에서부터 대본, 촬영, 연기, 편집까지 영화 작업 전 과정을 해냈다. 주인공이 소품을 담당하는가 하면 감독이 내레이션을 하는 등 1인 2역은 다반사.

“카메라 찍느라고 팔 빠지는 줄 알았어. 선생님이 카메라 고정시키라고 삼각대도 주고 했는데, 내가 원래 팔이 아파서 조금만 촬영을 해도 팔이 아프더라고. 그래서 하기 싫었냐고? 이 소리가 뭔 소리여? 얼마나 재밌었는디!”

카메라 촬영감독을 맡은 추정임 할머니는 “글자도 모르고 일만 하고 살았던 우리들이 이렇게 글도 배우고 영화도 찍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즐거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연출을 맡은 이성업 할머니는 요새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퍼뜩 걸음을 멈춰 선다. 다음에 찍을 영화 생각 때문이다.

“시골에 가다보면 우물이나 옛날 물건들이 있어요. 나는 그것들이 뻘로 안 보여. 다음에 영화 찍을 때 쓸까 싶어서.”

한글을 배우고, 사진기를 만져보고, 영화를 찍으며 ‘재미’를 찾았다는 어르신들은 말과 글,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들의 지난 생을 돌아보고, 또 다른 세대들에게 그동안의 삶을 보여주며 소통하고 있다.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영화 ‘남제골 우물 이야기’로 서울노인영화제 장려상을 수상한 순천영상미디어센터 노인영상미디어활성화 사업 ‘여그, 저그, 우리동네 야그’ 교육 참여 어르신들.
▲‘남제골 우물 이야기’ 영화 촬영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