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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by 순천광양교차로 2018.11.19

망덕포구에서 깨어난동주의 시 (上)
▲광양 망덕포구에 설치된 전어조형물

어머니, 전쟁이 끝나고 혹시 제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이 원고를 연희전문으로 보내 주십시오.

태평양 전쟁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정병욱은 고향집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맡겼다.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려가면서 연희전문에서 함께 수학하던 윤동주가 한글로 쓴 시 원고를 시골집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을 맞았는데도 윤동주는 돌아오지 못했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윤동주는 1943년 7월 치안유지법위반 혐의로 붙잡혀 1945년 2월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했다.

해방 후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정병욱이 어머니에게 맡겼던 원고와 윤동주의 친구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모아 윤동주의 3주기 무렵인 1948년 1월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윤동주의 육필원고가 보관됐던 곳, 정병욱의 고향집은 광양의 작은 포구 망덕이다.
▲광양 망덕포구

망덕포구는 봄이면 벚굴로, 가을이면 전어로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섬진강가에 벚꽃이 필 때면 상춘객들이 찾아들어 손바닥만 한 벚굴을 구워 먹고, 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면서 은빛 전어가 펄떡이는 곳이 망덕포구다.

1920년대 정병욱의 부모는 이 작은 포구에 집을 짓고 술도가를 경영했다.
▲정병욱 가옥

윤동주의 육필 원고가 보관됐던 이 가옥은 근대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낡고 녹슨, 포구의 바람을 견딜만한 낮은 양철지붕에 마당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1962년의 가옥 사진 한 장이 남아 있는데, 아마도 육필 원고가 감춰져 있었을 당시의 모습과 거의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저 마루 밑 항아리 속에 보자기로 감싸 간직했던 윤동주의 원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시를 알지도 느끼지도 못 할 뻔하지 않았는가.

윤동주는 백두산 아래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백두산에서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전라도에 와선 호남정맥으로 뻗어 나와 내장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데 호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망덕포구에서 바다와 만난다.

백두산 아래서 태어난 윤동주, 그의 원고가 백두대간이 바다와 마주하는 남쪽 끝 섬진강 작은 포구에 잠들어 있었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원고를 간직한 일을 일생의 가장 잘한 일중 하나로 회고했다고 하니 그와 윤동주의 우정은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인의 언어를 느끼려면 안소영의 소설 <시인 동주>를, 영상미를 포함해 오감으로 그를 스킨십 하려거든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윤동주의 시대와 역사, 뿌리를 알고 싶다면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읽어보라.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윤동주의 친구이며 사촌이고 일생의 동반자였던 송몽규가 평전의 작가 송우혜의 큰아버지로 친족 간에 전하는 이야기까지 내밀하게 평전으로 엮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