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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병철의 <석주명 평전>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병철의 <석주명 평전>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9.27

나비에 매료된 그들 ‘석주명과 남계우’
▲순천대박물관

“나는 논문 한 줄을 쓰려고 나비 3만 마리를 만졌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 채집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별자리 그리기, 잔디 씨 모으기 같은 과제를 하던 때 곤충 채집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생각해 보면 메뚜기, 잠자리 같은 곤충을 잡아서 제출하면 뭣에 쓰려나 의문을 갖지도 않았었다.

그저 방학이라 산으로 들로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기 바빴던 시절이다. 1931년 개성의 송도 중학생들의 여름방학 과제 중엔 나비채집이 있었다.

그곳엔 나비 박사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석주명 선생이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주명(1908~1950)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나비채집 여행을 다녔다. 그의 여동생(석주선)에 의해 1973년 출판된 <한국산 접류 분포도>에 실린 <채집 여행도>에는 국내 제주도, 울릉도, 흑산도 그뿐만 아니라 일본, 만주, 대만, 오키나와까지 붉은 점들로 채워져 있다.

계속된 연구 활동으로 인해 나중에 ‘변이곡선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 다윈이 해군 측량선을 타고 5년간 대양을 항해한 후 <종의 기원>을 썼듯이 석주명은 나비를 깊고 넓게 파고들어 나비 종에 대한 일갈을 이룬 것이다.

그의 <채집 여행도>를 보면 한라산부터 백두산에 이르는 전국이 그 대상이었다. 나비를 찾아 자연스럽게 전국을 누빈다.

생약연구원 자격으로 제주도에 머물면서는 제주도 방언을 채집하듯 모아 제주 관련 책을 출판했고, 한라산과 백두산을 누비고 다닌 경력으로 ‘조선 산악회’ 이사에 선출되기도 한다.

남북으로 갈린 상황에서 백두대간을 탐험한 탐험가는 많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석주명은 백두대간을 답사한 몇 안 되는 근대인이다.

나비에 관련한 글과 논문 중에 <남계우의 접도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남계우는 석주명과 100년의 기간을 두고 살았던 조선시대 화가로 나비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다.
▲남계우 화첩 (순천대박물관 소장)

남계우 화첩에는 나비가 수 마리씩 등장하는데 석주명은 100년 전 화가가 남긴 나비 그림을 보고 종류는 물론 암수까지도 구별해 냈다고 한다.

특히 한반도에선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남방공작나비를 화첩에서 알아봤는데, 후에 경남 구포에서 잡은 표본을 근거로 남방공작나비의 분포도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터럭 하나까지 자세히 그린 화가도 훌륭하고, 그것을 보고 답지 쓰듯 확인해준 생물학자는 또 뭐냔 말이지.

남계우의 나비 그림은 세밀한 묘사는 물론 섬세한 표현과 색감이 실제 나비를 보는 듯 사실적인데, 그의 나비 그림 세 폭이 순천대박물관에도 있다.

그의 화첩은 상설전시장엔 없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열람할 수 있다.
▲코스모스에 날아든 호랑나비

석주명과 남계우를 매료시킨 나비를 일부러 만나긴 쉽지 않다. 어느 날 코스모스 핀 길을 지나다 겁 없이 날아드는 호랑나비를 만날 행운이 있으라. 한 점에 몰두해 삶을 던진 그들을 기억하고 나비효과를 이야기한 미국의 기상학자도 끌어와 본다.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무엇이든)를 변화 시킨다” - 에드워드 n. 로렌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