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그곳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난중일기 – ①환선정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난중일기 – ①환선정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12.09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난중일기 – ①환선정
누대 난간에 봉산을 들인다는 환선정
▲1872년 순천부읍성 지도에 그려진 동천가에 자리한 환선정

환선정의 화살은 동천을 건너고
환선정은 죽도봉공원에 있는 정자다. 1543년 순천부사(심통원)가 성 동문 밖 동천 가에 처음 건립해서, 무예를 연습한 정자다.

임진(1592)년 3월 전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은 순찰사(이광)를 만나러 3박 4일간 순천부로 출장을 왔다. 환선정에서 순천부사(권준)가 베푸는 주연에 참석하고 활도 쏘았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중건됐는데, 1962년 대홍수로 유실됐다. 현재는 죽도봉공원에 복원돼 있다.

영화 <명량>, 소설 <칼의 노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현충사, 충무사, 타루비….

어느 여름날, 헌책방에 먼지 틈 사이에서 난중일기를 발견했다. 여수문화원에서 발간한 난중일기였다.

여수, 남해, 고흥, 통영, 진도, 어디를 가나 임진왜란, 정유재란과 관련된 곳이라면 장군을 팔아 관광과 수입을 연결하고 있으므로 이순신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칠 정도였지만, 그 정보의 원천인 난중일기를 읽어보겠단 생각은 못 했다. 헌책방에서 난중일기의 자태를 본 순간 저걸 읽어야겠다.\

그 전쟁의 실체와 이유를 개인 이순신에게 들어봐야겠다는 강한 끌림이 작용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난중일기는 원본 해석본이었기 때문에 더 친절한 상황설명이 있는 책이 필요했다. 찾던 중 발견한 노승석의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그런 상황에서 적당한 번역본이다.

등장인물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각주의 해설은 난중일기를 읽어내는데 흥미를 돋게 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주변 지인들을 끌어들여 난중일기 읽기 소모임을 만들었다.

혼자 읽을 때보다 시간은 더디 갔다. 임진, 정유재란 7년 전쟁을 7번에 나눠 읽는데 7주가 걸렸다. 느리지만 같이 읽는 즐거움과 타인의 생각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놀란 점은 난중일기가 우리 고장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순신의 영웅담은 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큰 전승을 거둔 해전 위주로 부각됐기 때문에 첫 해전인 옥포 해전이 있기 전까지 이순신의 전쟁 대비 상황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전라좌수영으로 부임 받은 것은 순전히 전쟁의 전운을 직감한 류성룡의 천거로부터 시작된 사건이다.

전쟁을 대비하는 무장으로서 사전 준비에 높은 비중을 둬야 한다. 전쟁 발발 후 백전백승의 신화는 이렇게 준비된 순서였다.

그 전쟁 대비에 우리 고장의 숨은 진가가 발휘된 것이다. 전라좌수영은 당시 순천부에 속했다. 순천대박물관에서 발간한 <이순신의 전쟁기록과 전라도 수군의 활동사>를 함께 읽었다.

이순신을 도운 전라좌도 수군, 5관(순천, 광양, 낙안, 흥양, 보성) 5포(사도, 여도, 발포, 녹도, 방담)에 대한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다.

난중일기만으로 부족했던 해설을 이 책으로 보완한 셈이다. 난중일기 속에 5관 5포의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그들을 빼고는 밥도 못 먹을 지경이다.

이순신은 그들이 오면 밥을 먹고, 회의하고, 활을 쏘고, 벌을 주기도 한다.

1592년 3월, 이순신은 5포를 순시하는 9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관찰사를 만나러 순천부에 간다.

3박 4일간의 출장으로 순천에 와서 공무를 보고 순천부사가 환선정에서 베푸는 주연에 참석해 활도 쏜다.

환선정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등장한다. 정유재란에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때 중건한 순천부사(유순익)의 시다.

병선으로 어느 해에 옛 정자 불탔던가
다행히 오늘 중수에 성공했네
친한 벗 모여드니 다 축하하는 손님이요
태수는 태연히 술 취한 늙은이네
▲죽도봉공원의 환선정

그 후로 환선정은 동천을 지키고 서서 순천에 부임한 관료나 묵객들이 지나치지 못하고 시흥에 젖어 시를 남기게 만든 명소로 이름났다.

지금 환선정은 어떤 모습일까. 동천 변에 있었다는 환선정은 1962년 순천 대홍수 때 유실됐다.

1988년 죽도봉공원에 복원되긴 했지만, 동천 변에 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쇠락한 늙은 호랑이 같다. 마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나무 바닥은 갈라지고 터졌다.

정원의 도시 순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 동천으로 환선정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