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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순천(2)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순천(2)

by 순천광양교차로 2018.11.12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인요한원스 어폰어 타임 인 순천(2)

▲ 한국형 앰뷸런스가 ‘안력산 의료문화센터’ 마당에 전시돼 있다.

향을 전라도라 하고 한국인의 영혼을 가졌다는 파란 눈의 서양 아이 인요한은 순천서 자랐다.

순천의 친구들이 북초등학교에 다닐 때 인요한은 홈스쿨링을 하고, 더 자라선 대전에 있는 외국인학교로 가야 했다.

그 후 의대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결핵치료에 힘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대학생이 된 1980년 서울의 봄은 혼란스러웠다.

5월 민주화의 시위가 절정일 때 휴교령이 내려져 순천 집으로 내려 왔다가 인요한은 광주의 5.18과 마주하게 된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광주로 들어가서 외신기자들에게 통역을 해 준 사건으로 인요한은 국가 주요시찰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처럼 본국 추방령을 앞두고 인요한은 순천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낸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그 해 한국인 이지나와의 이른 결혼은 한국을 떠나기 싫은 급박한 상황에서 결심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그의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급박함과 사랑은 같은 것이에요.”

1984년 인요한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택시로 이동하던 중 사망했다. 이 사고는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훗날 한국형 앰뷸런스를 제작하게 하는 이유가 됐다.
▲매산관

인요한의 아버지 친구 분들이 8년 동안 조의금을 모아 순천에 앰뷸런스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요한은 직접 15인승 승합차를 개조해 앰뷸런스를 만들고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응급구조 교육을 시켰다.

덕분에 ‘순천소방서는 첫 한국형 앰뷸런스를 소유하고 응급구조사가 58명이나 됐으며, 첫 해 1000여 회의 출동 건 수 중 62건은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의미 깊은 출동’을 했다.

수많은 인명을 구한 그 앰뷸런스가 은퇴해서 매산고등학교 뒤편 공마당길 ‘안력산 의료문화센터’ 마당에서 쉬고 있다.

인요한이 어릴 적 뛰 놀던 매산등은 근대문화유산과 기독 선교의 본거지로 매곡동 곳곳에 남아 있다.

매산중학교 교정에 ‘매산관’은 1930년에 석조로 신축한 건물이다. 설립 당시엔 ‘왓츠 기념 남학교’로 선교 목적으로 설립했다.
▲기독교 역사기념관

1939년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쇄했다가 해방 후 다시 학교를 열었다. 이즈음에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도 본국으로 추방됐다 해방 후에 다시 돌아 왔다.

매산여고의 교정엔 프레스턴 가옥이 있고, 매산길 끝엔 ‘기독교 역사기념관’이 있는데 개관일과 시간을 알아보고 가야 허탕을 면할 수 있다. 10월 해질녘과 일요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매산중에서 매산여고로 오르는 길은 흙 담 위에 기와를 덮은 고고한 멋이 깃든 긴 돌담이 아직 남아 있다.

인휴 선교사가 타고 다녔다는 지프도 매산길 옆에 전시돼 있다. 이 자동차는 인요한이 어릴 때 검정고무신을 신은 인휴 선교사와 함께 한 사진 속의 자동차다.
▲매산중에서 매산여고로 오르는 길의 돌담

순천 의료원에서 시작해 매산중학교, 매산여고, 매산고등학교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산책길은 순천의 근대문화 100년을 가늠하는 역사의 숨결이 있는 장소다.

매산등에서 꼬마 인요한의 발랄한 발걸음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흙 담의 고고한 멋에 눈길을 멈추기도 한다.

순천의 옛 지붕들을 내려다보다가 돌집의 강건함에 100년을 더 지탱하라 주문을 외워 두기도 하고 앰뷸런스의 인류애에 고개 숙여 감사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