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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by 순천광양교차로 2018.11.26

망덕포구에서 깨어난 동주의 시 (下)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보존됐던 정병욱 가옥.

어머니, 전쟁이 끝나고 혹시 제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이 원고를 연희전문으로 보내 주십시오.

윤동주의 육필원고가 보관됐던 곳, 정병욱의 고향집은 광양의 작은 포구 망덕이다.

정병욱 가옥을 찾아가는 망덕포구의 늦가을은 벚굴도 전어도 물러간 따사롭기도 한적하기도한 고요한 섬진강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다.

윤동주의 시가 잠들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예전엔 정병욱가옥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던데 이제는 집 앞으로 2차선 도로가 나고 포구의 방책이 세워져 있다.

2년 전 쯤에 왔을 때는 굳게 닫힌 유리문 밖에서 육필 원고가 숨겨져 있었다는 마룻장을 넘겨보고 돌아가야 했는데, 이번에 찾아간 그 곳은 광양의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며 방문객을 맞고 있다.

안채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는 살림집으로 특별한 날에는 개방된다고 한다.

이 양철지붕 아래 윤동주의 시가 잠들어 있었다니.
▲정음사에서 발행한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초판 복사본.

건축학으로서 근대유산에 등재된 것과는 별개로 이 양철지붕집은 ‘서시’를 외우며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별 헤는 밤’을 생각하며 야자 끝나는 밤길을 걸었던 학생이라면,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암흑 같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스물여덟 청년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의 시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귀하게 여길 곳이다.

전쟁에 끌려가는 아들의 유언 같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윤동주의 시를 온전히 지켜 낸 정병욱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우리에게 윤동주의 시를 남겨 준 이 양철지붕집이 백년은 더 그 자리에서 섬진강의 물길이 이리 저리 바뀌는 것을 지켜보게 해야 한다.

정병욱의 여동생은 훗날 윤동주의 동생과 결혼해서 두 집안은 사돈지간의 연을 맺게 되는데,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마룻장 밑에 원고 뭉치를 어머니께서 보여 주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순사들 눈에 띄면 절대 안 된다”고 당부한 물건인데 그녀가 펼쳐보니 한글로 써 있어 무슨 소린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자라 한글을 전혀 쓰지도 읽지도 못하던 세대였다.

학교에선 일본어로만 교육받고 있어 한글로 된 윤동주의 시를 한 글자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민족말살정책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가 숨겨져 있던 정병욱 가옥의 마룻장.

그런 시대가 몇 십 년 만 더 지속 됐어도 우리는 한글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에 한글로 된 시를 썼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지만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와 같이 체포됐던 송몽규는 동주와 같은 해 같은 곳에서 3달 먼저 태어난 사촌지간이다.

한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으며 연희전문을 함께 다녔고 일본으로 유학을 함께 떠났으며 같은 혐의로 체포돼 같은 곳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윤동주가 죽은 지 19일 후에 사망했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인생의 동반자로 삶과 죽음 가운데 함께 했으며 죽어서도 북간도 용정의 교회묘지에서 나란히 쉬고 있다.

문익환 목사는 북한을 방문할 때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문익환 목사도 윤동주의 고향친구였는데, 윤동주 평전을 자기가 쓰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나 송우혜가 쓴 평전을 보더니 ‘이것으로 됐다’ 했다니 이 평전이 갖는 정직함은 검증된 셈이다.

늦어지는 가을 광양 망덕포구에 가거든 윤동주의 시 한 편을 읊고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