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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한창기의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

[이사야의 ‘책 속 그곳’] 한창기의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

by 순천광양교차로 2018.12.10

한글·토박이 문화 계승의 노력 ‘뿌리 깊은 나무’ 上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이 예쁘고 열매가 성글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내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용비어천가 제2장의 내용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한글 창제 후 출판한 최초의 한글 출판물이다.

비록 왕이 만들고 홍보했다고는 하나 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초기 조선에서 한글은 그리 아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사대부와 관료들은 한자를 사용하고 중국 문명을 동경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글은 어떻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한글을 사용한 계층은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과 그녀들에게 편지를 쓰는 친족들과 중인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허균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다.

그 뒤로도 시간은 흘러 20세기 초에는 한글 말살정책이라는 핍박 속에서 한글로 된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해방 후 한글은 일본의 잔재와 덮쳐오는 미국의 자본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용비어천가의 한 토막에서 잘라 온 <뿌리 깊은 나무>는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전통문화를 지키고, 토박이 민중문화를 계승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1976년 순 한글 가로쓰기로 한창기 선생이 창간한 월간 종합 잡지다.
5년여의 발행 끝에 1980년 ‘전두환 장군의 철없는 소행으로’ 폐간 조치됐다. 이후 여성잡지인 <샘이 깊은 물>이 1984년부터 발행돼 2001년에 휴간했다.

낙안읍성 남문 밖 평촌마을엔 <뿌리 깊은 나무>의 편집자였던 고 한창기 선생이 수집한 유물 6500여 점으로 꾸며진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성곽 남쪽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이 박물관은 한창기 선생이 지키고 싶었던 전통과 민중 문화의 얼이 담긴 곳이다.

박물관 마당엔 석물들이 즐비한데 석탑, 석등, 석상, 어느 시대의 것인지 알 순 없어도 이젠 제 집 마당인 냥 함께 서 있다.

상설전시실에 전시 된 유물은 석기 시대의 토기부터 조선의 백자까지 유물의 면면이 다양하고 보존 상태도 완전하고 전통시대의 지식과 기술이 집약 된 유물에 개인박물관이라 보기에는 상당히 놀라운 유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조선후기 오동나무로 만든 책궤는 갖고 싶은 목록 1위에 올려놓아도 손색없는 물건으로 책거리 병풍에서만 봤던 것을 실물로 보게 돼, 거무튀튀한 나무 상자였는데도 몹시 흥분되는 물건이었다.

청동기 시대 별 토기, 백제의 기와, 고려의 쇠북, 청자사발, 조선의 청동바라, 백자항아리, 정순왕후 국장반차도, 일제강점기의 누비저고리까지 각자 관심 가는 분야의 유물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은 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쓴 글을 엮은 책이다.

한글에 대한 유별난 애정과 토박이 문화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글로 옛것을 보존해 후세에 남기려는 노력이 유물 뿐 아니라 그의 글에도 나타난다.

일본 교토에 있는 우리나라 유물로만 채워진 고려미술관의 설립자 정조문 선생을 생각나게 하는 지점이다.

이렇듯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보호하고 박물관으로 구연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보는 것은 그들의 노력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