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그곳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도올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도올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2.26

여순민중항쟁과 신전마을이야기(下)
도올 선생의 새 책이 제주4.3과 여순사건에 대해 다뤘다 해서 목차를 검색하다 신전마을 이야기가 있어 유튜브를 검색해 여수MBC에서 작년에 만들었다는 다큐를 찾아봤다.

진짜 우리가 아는 신전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맑은 물이 나는 샘이 있는데 물맛이 깨끗해 학교와 이어진 샛길로 다니며 물도 마시고 손도 씻곤 했다.

학교 안에 있는 수돗물 하곤 차원이 다른 시원함이 있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돌 틈 사이에서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샘물이 나는 마을이다.

그 마을 아이들은 마을이 불타고 학살당한 이야기를 함부로 내뱉지 않았고, 우린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빨갱이라서 죽은 게 아니라 죽어서 빨갱이가 됐다는 그 후손들도 함부로 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을 앞 조정래길에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 아래 여순사건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앞면은 여순사건의 간략한 소개를, 뒷면에는 신전마을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데 찢기고 터지고 녹슬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 훼손된 안내판

제주4.3은 특별법이 제정되고 추모공원이 만들어지고 진상이 규명되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있었지만 제주4.3과 하나로 연결된 여순은 70년 전 신전마을이 불타던 어둠 속에 아직 잠겨 있는 듯하다.

책을 덮고도 간간히 등골이 오싹오싹하다. 조정래길엔 조계산과 그 지맥아래 골짜기를 따라 수십가구 단위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조계산에 거점을 둔 산사람들이 언제든 마을로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이다. 태백산맥을 읽는 중에 그런 가정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실제로 산사람들과 토벌대 사이에 끼인 민간인이 학살당한 불행한 사건이 이 골짜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오금재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신전마을이 우리 마을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까지 미치면 머리끝이 서늘하다.

도올 선생의 ‘우린 너무 몰랐다’는 해방 후 불안정한 정국 속에 제주 도민의 기질과 여수·순천 등 전남 일대의 정치, 경재사정뿐만 아니라 여운영, 김구, 박헌영, 이승만, 김일성의 재구성과 소련, 미국, 일본, 친일, 친미의 탐욕까지 꿰뚫는 혜안을 보여준다.

당대의 석학이라 불리는 도올 선생은 제주 4.3과 여순은 하나의 사건으로, 그것은 민중항쟁일 수밖에 없다는 통찰과 함께 그것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지식의 스케일에 놀랄 수밖에 없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이 있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다’는 뜻인데, 정유재란 때 이순신과 호남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조선이란 나라도 없다는 뜻이다.
이순신은 항명으로 선조의 눈총을 받아 고문으로 죽을 뻔하고, 6.25 전쟁 때 김영환 대령은 미군의 폭격명령을 거부하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구한 일화는 항명도 아니었던 것이다.제주의 양민 토벌거부로 불거진 여순사건을 어찌 항명이라 할 것인가, 탐욕자의 망령이라면 모를까.

도올 선생은 이제라도 여순민중항쟁을 바르게 사고하고, 제주 4.3과 같은 결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끝맺고 있다.

한복 입은 남자가 뒤돌아서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빅 엿을 날리는 표지사진은 해방 후 현대사에 대한 도올 선생의 시원한 일갈인가, 아직도 왜 그 모양이냐는 일침인가?

우린 너무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