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그곳

[이사야의 ‘그곳’에 가다] 광양 중흥산성

[이사야의 ‘그곳’에 가다] 광양 중흥산성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4.16

쌍사자 석등을 보러 중흥산성을 가다
▲중흥사 인근에 활짝 핀 진달래 꽃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차례로 피고 있다. 이쯤이면 동백 차례가 됐으려니 싶어 광양 옥룡사지로 날을 잡았다.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이 숲을 이루고, 그 붉은 꽃은 필 때보다 질 때 눈물 나게 아름다운 여운을 남겨준다.

그런 이유로 고창 선운사의 동백이나 강진 백련사의 동백은 이미 문학 작품 속에서 빛나고 있다. 광양의 옥룡사지를 지키는 동백도 옥룡사의 영화를 기억하며 눈물 나게 붉게 피고지고 한다길래.

봄철의 날씨는 변화무쌍해 봄인가 싶으면 겨울 끝자락 찬 기운이 심술을 부리고, 겨울이 아직 남았나 싶으면 꽃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화려한 자태에 눈길을 뺏기다보면 수줍은 꽃들은 어느새 봄바람에 꽃잎이 다 흩어진다.

옥룡사지 동백을 보러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 나니 마침 비도 오고 심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광양 안내지도를 펼치고 옥룡사지 해설사님께 꽃이 언제쯤 필 것 같으냐는 둥, 한창 예쁠 때는 언제냐는 둥. 나 같은 인간을 수 십 명도 더 만나고 똑 같은 말을 되돌려 줬을 것이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던 중 눈에 들어온 중흥산성의 쌍사자 석등!

오호라~ 늦은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차로 갈수는 있는데 찾아가는 길은 쉬운데, 산길이 가팔라 오늘 같이 비오는 날은 미끄럽고 위험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역시나 중흥산성 안에 있다고 해서 중흥사라 불리는 절집은 경사면이 30도는 족히 넘는 스릴 넘치는 길을 타고 올라야 한다.

그렇게 찾아간 중흥사는 중흥산성 안쪽 평지를 골라 앉음새가 편안하고 요란스럽지 않아 고졸한 멋이 나는 대웅전을 갖고 있는 절간이었다.
▲중흥사 대웅전

알록달록한 플랜카드 하나 붙어있지 않은 얌전한 절집 마당은 너무 오랜만이다. 여염집 같다는 선암사도 이에 비하면 요란한 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마침 대웅전에서 주전자 물을 비우러 나오신 노스님께서 “어서 오시오” 하시는데, 말이라도 걸어 볼 것을 사진 몇 장 찍는다고 분주하다 돌아섰더니 사라지셨다.

대웅전 왼쪽 뜰에 석탑과 석등은 비오다 잠깐 비치는 해를 받고 있다. 석탑을 볼 때 균형미를 최고로 치고 보는 버릇이 있는데, 사료적 가치로 보물이 됐겠지만 중흥사 3층 석탑은 스마트하게 생긴 건 아니다.
▲보물 중흥사 3층석탑과 국보 쌍사자석등 모조품

대신 짝퉁이라도 그 옆에 있는 쌍사자 석등은 훨씬 감각적으로 조각돼 있다. 원래 중흥산성에 있던 쌍사자 석등은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되려던 것이 발각 돼 경복궁에서 한참을 지내다가 현재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모조품이라도 역시 원품이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답게 그 자태가 얼마나 훌륭한지. 연꽃 받침 위에 올라선 사자 두 마리가 연꽃 위에 석등을 받쳐 들고 있는 모양새다. 안정감 있는 구도에 해학적인 아기 사자상의 탱탱한 엉덩이까지 쓰다듬어주고 싶게 귀여움을 자아낸다.

석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진리의 빛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구제한다는 상징적인 조형물이기도 하고 불을 밝히는 실용적인 조형물이기도 한데, 나는 두 번째 의미의 실용적인 조형물로 석등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궁금해 하는 편이다. 중흥산성의 쌍사자 석등에 불을 켜면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