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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그곳’에 가다] 광양 중흥산성

[이사야의 ‘그곳’에 가다] 광양 중흥산성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4.23

광양 중흥산성의 진달래를 보다
▲활짝 핀 진달래꽃과 중흥사.

중흥사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는 가운데 중흥산성 안에 있다 해서 중흥사로 정하고 있는데, 처음 이 절을 창건한 이는 뒷동네 옥룡사에 동백을 심은 도선국사라고 한다.

그래서 석등의 이름은 중흥사 쌍사자 석등이 아니라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해발 400미터 급의 봉우리 대여섯 개를 연결한 중흥산성은 고려 때 쌓은 토성으로 그 흔적을 따라 산성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외성의 둘레는 3.4km로 안쪽으로 내성을 쌓았다는 특이점이 있다.

임란 때는 중흥사에서 의병과 승병들이 훈련을 했다하고 호남의 거의 모든 절집들이 그랬듯 정유재란 때 불 타 폐사 된 것을 최근에야 재건했다.

동천에 벚꽃이 한창 피던 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모여봐, 모여봐. 우리는 운동 부족이다. 내가 가벼운 둘레길을 알아, 3.4km인데 한 시간이면 돼!”

친구들을 꼬드겨서 중흥산성길로 데리고 갔다. 오전 예불소리를 들으며 산성 둘레길을 오르는데 생각지도 못한 진달래가 지천으로, 막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솔숲엔 법당 예불소리와 진달래뿐이다. 아름 따다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뿌려져 있다. 완만한 능선을 두 번쯤 치고 오르는데 솔가리 떨어진 토성길이 어찌나 폭삭한지.

예전엔 불쏘시개로 쓰려고 긁어갔을 가리나무가 지금은 쌓이고 쌓여서 진달래 꽃잎 떨어질 때 멍들지 않게 받쳐주고 있다.

오랜만에 산에 와서 부실한 체력들인데 산성길 곳곳에 쉼터를 마련해 두고 쉼터가 없어도 그냥 바닥에 철푸덕 철푸덕 잘도 앉는다.

그 와중에 진달래는 엄마가 젊어서 입던 다홍치마같이 붉다. 요즘엔 꾸미지 않아도 어여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첫 번째 봉우리를 내려오면 작은 정자가 나오는데 산중에 핸드폰 유·무선 충전기가 있다.

오~ 스마트한 문명의 흔적이다. 그곳에서 아랫마을서 막걸리와 두부를 사가지고 왔다는 라이더를 만났다. 작은 배낭에 꾸려온 과일과 나눠먹는 쏠쏠함이 있다.
▲중흥사와 중흥산성의 내력

우리에겐 아직 다섯 봉우리가 남았지만 간식도 떨어지고 진달래도 보고 볼 건 다 봤다는 의견이 팽배해 임도를 따라 중흥사로 휭하니 하산한다.

소월이 왜 진달래를 그렇게 노래했나. 마야가 왜 소월의 진달래를 불렀나. 중흥산의 진달래를 보면 아니 부를 수 없게 오지게 진달래꽃을 흥얼거리며 내려온다.
▲옥룡사지 동백꽃.

진달래로 유명세를 탄 산이 많지만 중흥산의 진달래는 중흥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피고지고 했던 진달래를 그 옛날 토성을 쌓던 민초들도 따 먹고, 쌍사자 석등을 쪼던 석공도 따 먹고, 분연이 일어나 화살을 다듬던 의병들로 따 먹었을 것이다.

중흥산성을 내려와 들른 옥룡사지의 동백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