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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인연은 송광사로 이어지다 (上)

소현세자의 인연은 송광사로 이어지다 (上)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5.07

[이사야의 '책 속 그곳'] 김인숙의 <소현>
▲송광사 대웅전 마당의 연등.

조선의 세자 중, 왕위에 오르지 못한 안타깝고 아까운 인물을 꼽으라면 소현세자가 첫 번째라는 설문조사를 본 적 있다.

2018년에 김훈의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돼 인기를 얻었다. 김훈의 간결하고 적절하고 확실한 언어로 써진 <남한산성>도,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도 전쟁의 악랄함을 조선백성의 피폐함으로 보여주고 있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9번 절함으로 끝난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세자였던 소현은 심양으로 끌려가 9년간의 볼모생활을 한다.

김인숙 작가의 소설 <소현>은 세자가 심양에 있던 마지막 2년, 조선과 청과 명과 세자와 볼모로 함께 끌려간 조선 포로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현세자는 볼모로 있던 심양에서 조선 사대부에게는 천한 장사놀음이라 볼 수도 있는 경제활동을 해서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온 조선포로를 구하고, 논을 사들여 농사를 짓게 하고 조선과 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한 정황이 있다.

이런 세자의 언행을 조선에선 곱지 않게 봤다는 것이다. 명의 폐망 직후 볼모생활이 끝나고 귀국한 소현세자의 가족에게 미친 화는 곱지 않은 시선의 결과였을 수 있다.

소현세자는 귀국한지 2달 만에 죽고, 세자비는 1년후 사약을 받았다. 그의 11살, 9살, 4살 난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를 가서 첫째와 둘째는 죽고, 3남인 경안군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런 소현세자와 연관된 유물이 송광사에 있다. 송광사에 가면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처럼 지붕이 있는 홍교를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나무 밑, 처마 밑을 기웃거리다 대웅전 부처님께 눈인사 한번 하고, 대웅전 왼쪽 건물을 스치듯 돌아 높은 계단을 오르면 송광사 절집의 지붕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숨을 고르다 내려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복장유물에서 저고리가 나온 관음보살상.

대웅전 왼쪽 건물이 관음보살님이 계신 관음전인데 이곳이 소현세자와 관련된 곳이다.

관음전 관음보살님의 복장유물을 조사하던 중 나온 여러 유물 가운데 비단저고리가 있다.

비단으로 지은 고운 저고리의 안감에 소현세자의 3남인 경안군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발원문이 나와 이 관음상을 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관음전.

시주자의 이름은 노예성이라는 궁궐의 나인으로, 그녀가 경안군 혹은 소현세자와 어떤 인연으로 관음상을 만들게 됐는지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나 경안군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마음으로 관음상을 만든 것은 확실하다.

궁궐 나인 노예성은 어떤 인물일까? 그녀는 소현세자를 따라 청의 볼모생활을 같이 한 인물일 수도 있고, 소현세자의 유모일 수도 혹은 그의 아들 경안군의 유모일 수도 있고, 경안군의 제주도 유배시절을 함께 했을 수도 있고, 홀로 유배지에서 살아 돌아온 경안군을 보필했을 수도 있겠다.

관음보살상을 시주할 만큼 재력가인가? 단순히 명을 받고 일을 진행했다고 보기엔 그녀의 정성이 갸륵하다.

후대에도 소현세자의 이른 죽음이 조선의 개화를 100~200년은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당시에도 소현세자의 죽음과 그 아들의 곡진 삶을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