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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인연은 송광사로 이어지다 (下)

소현세자의 인연은 송광사로 이어지다 (下)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5.14

[이사야의 ‘책 속 그곳’] 김인숙의 <소현>
▲관음전 뒤 지눌스님 부도 가는길

송광사 대웅전 마당엔 초파일을 기다리는 연등이 걸려 있고, 불경소리 웅웅거리는 법당 앞을 지나면 가지런한 스님들의 털신발이 보인다.

20여 년 전 할머니 따라갔던 선암사에서 먹어본 후로 절집에서 점심공양은 오랜만이다. 청국장에 비빔밥을 양껏 덜어먹을 수 있는 뷔페로 속이 편안한 음식이다.

먹어본 바로는 어려워 할 것 없이 들어가 먹고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 설거지를 잠시 도와주고 나오면 된다.

소현세자의 3남 경안군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관음전의 보살상을 만들 당시 경안군은 19살이었는데, 제주 유배시절부터 얻은 허약함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관음보살님이 만들어진 후 겨우 3년을 살다 22세에 죽었다.

청의 포로로 잡혀가 9년간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조선은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고도 조선은 아직 개화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인숙의 소설 <소현>은 마치 김훈의 <남한산성>을 잇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김훈의 필체가 <소현>에서도 보이는 것 같고, <남한산성>에 살던 조선 백성이 <소현>에서도 끌려 나오는 듯하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영광도 비굴도 왕의 몫일지언정 고난의 밑바닥에 백성이 깔려 있는 것은 어느 전쟁에나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

대웅전 왼쪽 관음전 뒤로 돌아가면 붉은 철쭉꽃 사이로 높은 계단이 있다.

제법 높은 곳으로 오르면 송광사 절집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큰 절답게 지붕의 위용도 볼만 한데, 이곳이 첫 번째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가 있는 곳이다.

지눌스님은 천년 넘게 높은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송광사의 쇠락과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지눌스님 부도에서 본 송광사 절집 지붕

부도 옆 ‘불일보조국사감로지탑’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의 글씨로 그는 구한말 역관인 오경석의 아들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간송미술관의 전형필과 인연이 깊은 인물로 각인돼있다.

8대가 이어 역관을 해온 집안이었으니 위로 거슬러 오르면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였을 때 인연을 맺은 역관의 선조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시 역관사회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만큼 확률이 높은 상상력이라 해두자.
▲지눌스님 부도와 위창이 쓴 감로지탑비

송광사 율원 옆에는 역대 국사 스님들의 부도밭이 있다. 몇몇 부도는 조계산 명당에 자리 한 스님들도 계시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부도와 탑들이 산재한 곳이 송광사와 조계산이다.

5월 초파일 전후에 송광사에 한번 다녀가시라. 소현세자의 인연을 붙들고 관음전 보살님을 만나러 가도 되고, 법정스님의 말씀을 세기며 불일암에 들러도 된다.

위창 오세창의 글씨를 보러 부도탑을 올라도 되고, 연등에 소원을 밝히러 가도 되고, 점심공양 한번 하고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