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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강판권의 <숲과 상상력>

[이사야의 ‘책 속 그곳’] 강판권의 <숲과 상상력>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6.12

낙안읍성의 노거수를 만나러 가다 (下)
▲해마다 제사 지내는 객사 옆 팽나무

낙안읍성 중앙에 은행나무와 낙민루 앞에 느티나무를 만났다면 그다음은 객사를 중심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고목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읍민들이 살았던 읍성의 남쪽과는 달리 읍성의 동헌과 객사가 있는 북쪽 근처에는 노거수가 제법 많이 모여 있다.

특히 객사 뒤쪽 고목들은 성곽을 붙들고 있는 듯 성곽과 하나가 돼 보인다. 이곳의 성벽은 읍성 복원 때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곳이었다.

조선시대 쌓았던 성곽 그대로인 곳은 아마도 이곳이 가장 확실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난이 일어 백성은 피난 가고 초가와 동헌이 불타는 와중에도 북쪽이 자리한 이곳이 피해를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나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필요 때문에 나무를 자르거나 옮기거나 한다. 이처럼 오래된 고목에는 마을을 수호한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천재지변이 아니고서는 고목을 해하는 일은 드물다.

객사 뒤 푸조나무는 ‘이순신나무’로 불리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의 쓴 패배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수군 재건을 위해 낙안읍성에 들러 군비와 병사를 모집한다.
▲이순신나무라 불리는 객사 뒤 푸조나무

이때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객사 뒤 푸조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나무의 수령이 그렇게 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에 들렀던 것은 확실하다.

티끌이라도 끌어 모아 전투를 준비하던 장군의 고뇌가 전하는 이야기로 전해질 뿐이다.

낙안읍성에는 이순신 장군과의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오봉산에 올라 판세를 전망했다는 장군바위와 읍성의 돛대를 상징하는 은행나무에서 마차 바퀴가 빠져 길을 지체하다 홍수로 불어난 다리가 끊기는 사고를 피했다는 사건과 푸조나무를 심은 이야기다.

이들은 산과 나무와 관련된 일화로 역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데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객사 오른편에는 잎이 무성하고 멋지게 생긴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늘어져 지지대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균형 잡힌 탑을 보는 듯 안정감이 있다.

그 옆에는 그네를 만들어 아이들이 그네 띄는 모습을 항시 볼 수 있다. 이 팽나무는 마을 어귀에 심은 당산나무의 역할을 한 모양이다.

매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화를 갖고 있는데, 일본 경찰을 피해 이 나무에 올라가 숨으면 잎이 무성했던지 나무 신이 보호해줬던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나무 인문학자로 불리는 강판권의 신간 <숲과 상상력>을 붙잡고 있으면 낙안읍성의 노거수를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순천 낙안읍성 노거수 위치도 <사진제공 : 낙안읍성 관리사무소>

한자리를 차지하고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 담긴 상상력을 펼치기엔 고목들이 사는 낙안읍성은 안성맞춤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의 원형을 보여주는 성으로 백성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남은 노거수의 집단 서식지로도 특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