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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은철의 <매천 황현을 만나다> (上)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은철의 <매천 황현을 만나다> (上)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6.18

새내기 문화재가 된‘매천야록’
▲매천 황현 사진과 초상화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지가 있다. 특집기사와 고정 꼭지를 합쳐 50쪽짜리 얇지만 알찬 구성으로 문화재 소식을 전하는 <문화재사랑>이다. ‘풍류로드’ 꼭지를 가장 좋아하지만, 때에 따라 ‘문화재 과학사’나 ‘DMZ가 숨겨둔 보물’ 코너가 좋았던 적도 있다. 이번 6월호는 뒷면 겉표지에 알림 글 ‘새내기 문화재’가 좋았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이 지난달 새내기 문화재로 문화재청에 등록됐다는 소식이다. 매천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시인이고 경술국치 직후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한 선비로 알려져 있다.

[매천야록]은 1864~1910년, 47년간의 역사적 사건을 시대적 사명감으로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것으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다.

광양제철고에 재직 중이던 이은철 선생은 <매천 황현을 만나다>를 출간하고 역사학자로서 저평가되고 있던 매천을 대중 앞으로 끌어왔다.

순천, 광양, 구례에 흩어진 매천의 흔적을 모아 매천 지도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백운산 문덕봉 아래 서석마을에서 태어난 매천은 할아버지의 재력으로 천 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읽게 됐다. 현재 매천의 생가는 초가로 복원되고 상주하는 해설사가 있다.
▲광양 봉강면 석사리에 소재한 매천 황현 생가

특이한 점은 석사리 758번지는 일제 강점기 때 소유주가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할아버지였다.

이후 할아버지의 유산은 김승옥에게 상속됐다. 매천 황현과 김승옥은 석사리 758번지에서 시대를 이어 살았던 명문장가다.

“이미 만 권의 책을 읽었으니 또한 사방으로 돌아다닐 만하네.”

26세에 만 권의 책을 읽은 당당함으로 호연지기를 품고 금강산, 전라 좌수영, 노량해전의 바다를 유람했다. 일본의 시뻘건 침략 앞에 충무공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매천은 구례 월곡마을로 이사하게 되는데 이곳이 지금의 매천사다. 매천이 쓴 역사서 중 ‘오하기문’은 월곡마을 대월헌의 오동나무 아래서 동학농민운동을 기록한 것으로 [매천야록]의 초안이 되는 책이라고 한다.
▲매천야록 사본

매천은 러일전쟁의 시말을 기록하고, 을사늑약이라 썼고, 을사오적에 관해 이야기했고, 늑약에 항거한 이들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의병 최익현과 고광순을 기렸으며 의병 활동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소상히 기록했다.

매천의 생가가 있는 광양 서석마을은 이른 봄에 가면 매화향이 짙게 난다. 마을 입구부터 담장에 벽화를 매화로 장식하고, 이곳이 매천의 생가임을 알린다. 6월쯤에 방문하면 그 가지에 매실이 주렁주렁할 것이다.

방 안에 고가구들 사이로 매천의 사진과 초상화 사본이 전시돼 있다. 마당엔 우물이 있고 그 옆엔 장독대가 있다.

매천 당시의 건물로 복원된 것인지 물으니 그건 아닐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작가 김승옥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때와 더 가까운 복원일 것 같았다.

매천 황현이 순국할 때 살았던 월곡마을 대월헌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지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 담 너머로 높이 솟은 오동나무만 바라보다 와야 했다.

대월헌 오동나무 아래서 [매천야록]을 쓰고 글쓰기를 즐겼다니 저 오동나무는 매천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