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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은철의 <매천 황현을 만나다> (下)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이은철의 <매천 황현을 만나다> (下)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6.27

존재 자체가 극비였던
일제 강점기의 ‘매천야록’
▲순천대 박물관 매천 전시실.

새내기 문화재로 등록된 [매천야록]은 일제 강점기에 존재 자체가 극비였다.

매천 황현이 경술국치 직후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하자 동생 황원은 그의 시와 글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시절이 어수선해 번번이 실패했다.

이때 중국으로 망명해 있던 매천의 친구 김택영이 중국에서 발간해 국내로 들여오자는 제안을 했다.

전국에서 267명의 선비가 491원의 성금을 후원해서 <매천집>을 간행하게 됐다. 500질을 간행해서 50질은 중국에, 450질은 국내로 보내졌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내 선비들에게 배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개성을 거쳐 구례로 오는 방법과 의주를 거쳐오는 방법을 논의했음에도 일제의 감시를 피하지 못하고 다수의 <매천집>이 압수당했다.

1911년에 간행된 <매천집>은 1920년까지 조선총독부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동생 황원이 돌려 달라고 요구해 일부를 돌려받기도 했다.

매천의 문집을 간행하는데도 이럴진대 역사서 성격을 띤 [매천야록]의 간행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매천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좋은 날이 오기 전에는 [매천야록]의 존재를 비밀로 하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윤동주의 육필원고가 망덕포구 부둣가 마룻장 밑에 숨겨져 있다가 해방 후 빛을 보게 된 것처럼 [매천야록]도 일제 강점기에는 존재 자체가 극비인 물건이었다.

이은철 선생의 <매천 황현을 만나다>는 순천, 광양, 구례에 흩어진 매천의 발자취를 한데 모으는 작업의 시초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깊지만, [매천야록]으로 접근하는 열쇠를 쥐여 준 셈이다. 목민심서는 알지만 읽은 사람이 드물고, 매천야록은 알지만 읽은 사람 또한 드물다는 점에서 말이다.

광양은 매천의 생가가 있고 구례는 서른 이후 매천의 삶과 글쓰기의 바탕이 된 곳이다.

매천의 유물은 순천대 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하고 있다. 순천대 박물관에 가면 매천이 서울 천연당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과 그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가 있다.
▲순천대 박물관에 전시된 매천의 유물.

천여 권의 책들은 흩어지고 남은 책 중 즐겨 읽었다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그의 글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과거 시험에 제출한 답안지의 단정한 글씨는 뭐라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름답다. 마치 알아듣지 못하는 음악을 듣고 좋은 걸 아는 느낌이다.
▲매천의 과거시험 답안지.

순천, 광양, 구례는 매천 황현으로 인해 하나의 지도 안에 강제로 편입됐다. 문화재로 등록된 [매천야록]이나, <매천 황현을 만나다>로 진짜 황현을 만나고 싶다면 하나의 지도 안에 모여야 한다.

<매천집>을 간행하기 위해 전국의 선비들이 후원하고 <매천집>을 은밀히 구독했던 것처럼, [매천야록]의 존재를 비밀로 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에 그 존재를 알고 있던 몇몇 인사들이 끝까지 함구해서 해방 후 빛을 보게 된 것처럼 매천을 만나러 가는 지도를 순천, 광양, 구례로 연결해야 할 때다.

[매천야록]이 문화재로 등록됐다고 알려준 월간지 <문화재사랑>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독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퀄리티 높은 잡지가 무려 공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