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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의 <이옥전집>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의 <이옥전집>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07.29

선비를 따라가는 폭포 구경
▲비 온 뒤의 용서폭포 모습.

읍의 북쪽 60리에 폭포가 있는데, 용서폭포라고 한다. 평소에는 물줄기가 삐질삐질 볼품없이 떨어지다가도 장마나 큰비가 온 후엔 장관을 이룬다 해서 지인들에게 가보자고 권하기를 여러 번 했다. 마침 태풍이 지나간 아침 잔비를 맞으며 가보기로 한다.

같이 간 사람으로는 차를 타면 든든하지만, 산길은 썩 믿음이 안 가는 친구 한 명뿐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대하며 우산을 두 개 챙기고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옥전집>을 빌렸다.

목차를 훑어보다가 ‘폭포 구경’이라는 제목이 있어 웬 떡이냐 하고 읽다가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읍내 북쪽 삼십 리에 폭포가 있는데, 황계비폭이라고 한다.’로 시작하는 세 쪽짜리 짧은 소품문이다. 조선 선비의 글에 자유분방함이 넘쳐 이글의 시작을 이옥의 글을 흉내 내 써봤다.

이옥은 정조시대 선비다. 성균관 유생 시절 임금께서 이옥의 문체가 괴이하다고 역정을 내시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했다가 지방 군대에 편입시키는 ‘충군’을 보냈다.

정조의 문체반정 한가운데서 핍박을 받은 선비다.

문예 부흥기라 일컫는 정조 시대의 문체반정은 빛나는 시대에도 귀퉁이엔 암흑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이옥의 문체가 정조 시대엔 괴이했을지라도 2백 년 후인 지금에 어울리는 글이니 시대마다 풍운아들이 많고도 많았다.

고개를 넘고 터널을 지나 용서폭포로 간다.

국도를 지나다 편의점에서 추억의 보름달 빵과 음료수를 샀다. 반쯤 가다 들른 마을에 복숭아 농원에서 두 봉지를 샀다.

주인은 비가 와서 손님이 뜸한 줄 알았는데 찾아 왔다고 팔지 못하는 못생긴 복숭아를 따로 한 봉지 담아준다. 이옥도 주막에 들러 허기를 채우고 술로 풍류도 채웠다.

폭포 아랫마을 제일 윗집에 도착하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이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산에 다녀오십니까?”

“비가 와서 폭포를 보러 가는데 입구를 못 찾았어요.”

“저기, 사유지로 들어가야 해요. 어디서 오셨어요?”

“거제에서 왔습니다.”

“비박을 하실 거예요?”

“아닙니다. 벽 타는 곳이 있다길래 …. 폭포도 보고 가려고요.”

예기치 않게 동행이 생겼다.

계곡물이 불어서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가운데 돌이 하나 빠져서 초입부터 쫄았다.

10분쯤 오르는 짧은 산길이지만 숲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인간은 자연 앞에 쪼그라든다.

계곡으로 달려들 듯 흐르는 물소리가 진군하는 군대의 말발굽처럼 요란하고 끊임없이 달려든다.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숲을 가득 채우고 나뭇잎 사이로 얼핏얼핏 폭포가 보인다.

폭포가 전모를 다 보여주기 전에 나타난 수직 적벽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자연 암벽장이다. 이 수직 절벽은 앞엔 제법 너른 평지가 있고 적벽을 돌아가면 50m 높이의 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자연암벽장

지난 태풍은 200m라는 강우량을 기록하고 물러갔다. 그답게 폭포의 수량이 차고 넘쳐서 암벽장 평지까지 폭포수가 날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젖게 만들었다.

용이 머무는 곳이라는 용서폭포는 태풍이 작은 태풍을 폭포에 남기고 갔다. 소리도 우렁차고 떨어져 날리는 폭포수에 홀딱 젖었다.

우비도 없이 가까이 갈 수도 없고 계곡물의 위세에 아래로 내려가 전체 모습을 찍을 수도 없다. 몇 장 찍는 사이에 카메라는 물에 빠진 것처럼 다 젖었다.

손수건으로 닦아보긴 했는데 폭포 옆에선 빗속에 서 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본 중에 가장 멋진 모습이었는데 눈으로만, 귀로만 담아가라는 자연 박물관에 온 것 같다.
용서폭포는 순천시 황전면 금평리(용서마을 뒷산) 산 32번지에 있다.

정조임금은 이옥의 글을 가볍고 괴이하다고 경계했다. 그러나 이옥의 소품문은 훗날 조선 시대의 사회구조와 생활상을 소개하는 중요한 글이고, 지금 읽어도 격세지감을 느낄 수 없는 시대를 아우르는 글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것들을 명품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