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그곳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김회진 기자 kimhj0031@hanmail.net 2019.12.02

잔인하고 충만한 연안 습지 순천만
반딧불은 종마다 신호가 다르다. 암컷 반딧불은 불빛을 반짝이며 수컷에게 신호를 보내 짝짓기를 한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다른 종의 수컷에게 신호를 보내 유인해선 별안간 잡아먹는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끼니로 해결한다.

암컷 사마귀는 수컷이 교미로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부터 흉부, 날개, 앞다리까지 완벽하게 집어삼킨다.

암컷 반딧불과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종을 다루는 본능, 생존하는 방법이다.

엄마가 떠나고 오빠와 언니가 차례로 떠난 습지의 오두막, 술주정뱅이 퇴역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떠난 그곳, 카야는 생존에 필요한 것을 습지에서 배운다.

반딧불과 사마귀의 교미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미묘함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을까.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동물학을 연구한 박사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고 자연과학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듬뿍 담긴 글에 놀라웠는데, 델리아도 그쪽 부류에 이름을 올려야 할 만큼 그녀의 문장은 잔인하면서 충만하다.
은하수가 검푸른 하늘을 타듯 유려하고 습지와 곤충을 관찰하는 생물학을 노을이 하늘빛을 바꾸듯 경이롭게 만들었다.

비열한 인간을 포함한 습지의 모든 것은 카야를 성장시키고, 편견과 지독한 차별, 그에 못지않은 사랑을 알려준다.

자연과학 소설이었다가 사랑과 배신을 찍는 연애소설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다루는 법정 스릴러다. 반전의 작은 반란은 깊은숨을 토해내게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 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써진 소설로 순천만 연안 습지 근처에 서식하는 우리와도 가까운 이야기다.
습지는 ‘빈곤한 지역이었지만 척박한 땅은 한 치도 없었다…. 땅에도 물에도 살아 있는 것들이 겹겹이 쌓여 꿈틀거렸다.

귀찮아도 좀 휘젓고 저녁거리를 찾을 의향만 있다면 굶어 죽을 일은 없었다.’

연안 습지를 품고 있는 순천만에 겨울 철새가 찾아 든다. 그들은 그들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자연에 기대어 지구 한구석을 공유하고 공존한다.

용산 전망대로 가는 갈대 길의 고적함이 옛적 그대로인 길은 <남도삼백리길> 1코스다. 와온 해변공원을 지나 용산 전망대까지 가는 산책로가 인간과 자연의 길을 반듯하게 가른다.
오른쪽은 인간이, 왼쪽은 갈대와 칠면초와 떨어지는 햇발을 받고, 갯벌 마사지 중인 칠게와 숨바꼭질을 하는 짱뚱어를 만날 수 있는 연안 습지가 길고 넓게 펼쳐지고 이어진 곳이다.

순천만은 빈곤하지만 척박한 땅은 한 치도 없는, 카야에게도 그랬듯이 칠게와 촌부에게도 먹거리를 나눠주는 생명의 땅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 모두를 생존하게 하고 하나의 생이 마감될 때 아낌없이 품어 줄 것이다. 연안 습지는 델리아 오언스의 문장처럼 잔인하고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