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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난중일기 - ②옥계서원·곡수서원

[이사야의 ‘책 속 그곳’] 난중일기 - ②옥계서원·곡수서원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12.16

숨은 영웅이 잠든 5관 5포
▲곡수서원

임진왜란 7년 전쟁을 3단계로 구분해보면 전쟁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기는 임진년부터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던 처음 2년, 중기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종전 협상이 이뤄지는 휴전기 3년, 마지막 후기는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관음포 해전까지의 2년이다.

이 모든 전쟁기간 동안 근동 5관(순천부, 보성군, 낙안군, 광양현, 흥양현) 5포(사도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 방답진)의 헌신과 희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을 도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형제와 아들은 물론 조카와 조카사위, 외사촌에 이르는 친족과 집안 가노의 이름도 무시로 등장한다.

미처 이름을 알 수 없는 광양사람, 보성사람, 흥양사람도 장군의 일을 도왔다.

조선 초 사화를 거치면서 서울에 살던 가문들이 중앙정치를 버리고 속속 순천으로 입향했다. 순창조씨, 양천허씨, 고령신씨, 경주정씨, 영암정씨, 성주박씨, 광산이씨, 목천장씨들이 사화기에 순천으로 이거 해 대대로 순천지역 사족이 된 집안이다.

임란이 일어나자 이들 사족들은 씨족 단위로 의병 활동을 하거나 군관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단편적으로 순천의 경주정씨 일가와 영일정씨 일가는 전쟁기간 내내 이순신을 가까이에서 보필했다.

경주정씨 옥계 정승복의 아들 정사준은 이순신 휘하 군관으로 활약했다. 광양만을 지키는 복병장으로 파견됐고, 독창적인 조총제작법을 창안한 인물이다. 동생 정사횡, 정사정, 아들 정선, 조카 정빈 모두 군관으로 복무하거나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 조달에 공헌했다.

특히 정사립은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한다. 무예에 능했을 뿐 아니라 문장 또한 뛰어난 인재로 장계의 초고를 작성하는 등 이순신을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옥계서원

이들 중 4명이 명말 마을(순천 팔마운동장 옆) 옥계서원에 배향돼 있다.

영일정씨 정소의 아들 정원명, 정상명은 이순신의 백의종군 시 보름간 순천에 머물 때 집을 내어주고 정사준 등과 함께 제반의 사항들을 살폈다.

초계의 권율 휘하로 들어가 이순신이 통제사로 재임명 될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켰다.

영일정씨 형제는 조례동 곡수서원에 배향돼 있다. 경주정씨와 영일정씨는 순천지역에 입향 한 이후 대대로 터를 잡고 사족 간의 통혼으로 이어진 사돈지간이다. 정상명은 정승복의 사위였다.
▲곡수서원 옆 영일정씨의 선산

추석이 돌아오면 서면에 있는 선산으로 벌초하러 간다는 친구 녀석이 생각나 톡을 보냈다.

“니, 영일정씨냐?”

“어, 어떻게 알았어?”

“대대로 서면에서 살았고?”

“어 양반이었어!”

“추운데, 누가 소고기 사주면 조상님 덕인 줄 알아라,”

이 녀석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순신과 절친이었던 걸 알고 있기나 했을까.

순천 근동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선대를 거슬러 임진년의 이순신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임진왜란, 백의종군 시절을 보내고, 정유재란을 치른 이순신이 믿고 비벼댈 만한 언덕은 순천부와 근동 지역의 집단이었다.

전라도 수군의 구성원이라든가, 좌수영의 군사를 먹이고 입힌 근동의 지역민들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난중일기 곳곳에 있다.

전승으로 빛나는 전과를 올린 해전 뒤에 숨은 공헌자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지역민들이 난중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옥계서원과 곡수서원은 도심 속에 있어도 찾는 이는 드물다. 옥계서원을 해 질 녘에 찾아갔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다음 주말로 약속을 하고 다시 갔다.

서원은 구색만 갖췄을 뿐 향하나 피워 올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모습이다. 어느 때고 찾아가서 자연스럽게 향 하나 피울 수 있게 관계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모르고 지냈던 숨은 영웅을 찾았는데 그동안 너무 몰라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