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순사건’ 희생자, 71년 만에 다시 재판

‘여순사건’ 희생자, 71년 만에 다시 재판

by 김회진 기자 kimhj0031@hanmail.net 2019.03.22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심 개시’ 결정 원심 확정
“민간인, 군·경에 무차별 체포·감금 ... 재심사유”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71년 만에 다시 재판이 이뤄진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故) 이모씨 등 3명의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증거 취사선택과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 영역이고, 형사재판에서 심증 형성은 반드시 직접 증거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검사는 원심의 사실인정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재항고했는데,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증거 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다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 체포·감금이 이뤄졌고, 이씨 등이 연행되는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판결서가 남아있지 않아 재심할 수 있는 대상 사건이 없다는 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판결서가 판결 자체인 것은 아니고, 판결서가 미작성됐거나 없어졌더라도 선고된 이상 판결은 성립한 것”이라며 “유죄 확정판결인 이상 재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씨 등의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집행된 사실은 판결 내용과 이름 등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 당시 언론보도로 알 수 있다”며 “판결서 원본 작성과 보존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판단했다.

또 “계엄령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해 위헌·위법 논란이 있지만, 국가공권력의 사법작용으로 군법회의를 통해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 성립은 인정된다”면서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게 재심제도 목적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대통령 지시를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국군은 지역을 탈환한 뒤 반란군에 협조·가담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내란죄로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8명이 군과 경찰에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당했다며 이들을 민간인 희생자로 확인했다.

이후 이씨 등의 유족들은 군과 경찰이 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뒤 사형을 선고했다며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은 유족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검찰은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항고했지만 2심인 광주고법도 “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춰 이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됐다”며 1심의 재심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씨 등에 대한 재심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