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진실은 아직 ‘……’
여순사건 진실은 아직 ‘……’
by 운영자 2009.10.19
61주년 위령비 뒷면에 말줄임표만 새겨
유족 “여수시, 원하는 비문 문구 새겨주지 않았다”
여수시 “정부 차원 진실 규명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여순사건 61주년을 맞는 날.
15일 여수시 만흥동 마래산 아래 작은 빈터. 사건 발생 61년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위령비’가 만들어졌고 오늘 제막식이 치러진다.
그러나 여느 위령비와 달리 비 앞면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라는 비명만 새겨져 있을 뿐 뒷면에 있어야 할 ‘비문(설명)’이 없다. 비문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말 줄임표(점 6개, ……)만 덩그러니 찍혀 있다. 이 때문에 비의 제막을 앞두고 유족들은 또 한번 울분을 토했다.
김천우 여순사건 유족회장은 “여수시가 비를 세워주면서 유족들이 요구한 비문을 넣어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미완의 비’가 건립됐다”며 “비문에 여순사건의 실체를 담은 ‘학살’이라는 문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61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유족들이 원하는 비문조차 새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점만 6개 찍은 것은 ‘줄임’을 뜻하는 것으로, 유족들이 속으로 삭여야 하는 분노와 한, 울분 등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 등이 마련한 비문은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발발하여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수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 일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중략- 여순사건 영령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영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위령비를 세운다’고 돼 있다.
이에 여수시 관계자는 “아직 정부 차원의 진실 규명이 끝나지 않은 데다 일부 단체가 ‘학살’이라는 비문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유족 “여수시, 원하는 비문 문구 새겨주지 않았다”
여수시 “정부 차원 진실 규명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여순사건 61주년을 맞는 날.
15일 여수시 만흥동 마래산 아래 작은 빈터. 사건 발생 61년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위령비’가 만들어졌고 오늘 제막식이 치러진다.
그러나 여느 위령비와 달리 비 앞면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라는 비명만 새겨져 있을 뿐 뒷면에 있어야 할 ‘비문(설명)’이 없다. 비문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말 줄임표(점 6개, ……)만 덩그러니 찍혀 있다. 이 때문에 비의 제막을 앞두고 유족들은 또 한번 울분을 토했다.
김천우 여순사건 유족회장은 “여수시가 비를 세워주면서 유족들이 요구한 비문을 넣어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미완의 비’가 건립됐다”며 “비문에 여순사건의 실체를 담은 ‘학살’이라는 문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61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유족들이 원하는 비문조차 새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점만 6개 찍은 것은 ‘줄임’을 뜻하는 것으로, 유족들이 속으로 삭여야 하는 분노와 한, 울분 등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 등이 마련한 비문은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발발하여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수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 일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중략- 여순사건 영령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영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위령비를 세운다’고 돼 있다.
이에 여수시 관계자는 “아직 정부 차원의 진실 규명이 끝나지 않은 데다 일부 단체가 ‘학살’이라는 비문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