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WTO 개도국 지위 포기 ... 광주·전남 농민 ‘격분’

WTO 개도국 지위 포기 ... 광주·전남 농민 ‘격분’

by 순천광양교차로 2019.10.28

“중환자의 호흡기 뗀 꼴 ... 농업 포기 선언 간주”

정부가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밝힌 25일 광주·전남 지역의 농민들이 정부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WTO 개도국 논의 대응 방향’을 논의, 의결한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주요농산물 생산 비중이 큰 광주·전남 지역 농민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격한 반응을 내놨다.

김성보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한국 농업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이미 농산물 가격 폭락에 따른 대책도 실효성이 없어 농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취약산업인 농업 부문을 보호하기 위해 유지했던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사실상 환자의 연명치료를 포기하는 격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농·축산물이 이미 국내 시장을 점유했다. 개도국 지위 유지 중임에도 이 지경이다”며 “특히 쌀 수입 관세율이 낮아지면 쌀 산업은 초토화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의 농민 소외 농정정책 실종도 규탄하며 성난 농심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갑성 광주시농민회 부회장은 “WTO 자체가 지난 10여 년 간 사실상 유명무실화됐을 뿐더러, 공식 문제제기가 나온 것도 아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식량 주권을 포기한 셈으로 자주국가가 맞는지 의문이다”며 성토했다.

또 “식량자급률 24%인 점 등으로 미뤄 다른 산업과 달리 농업만큼은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부족한 보조금 지원마저 끊길 위기다.

지난해 농산물 가격 폭락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없이 악재가 겹치면서 농민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이번 결정에 앞서 국회와 농민단체와의 충분한 협의 또는 의견수렴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도 즉각 성명을 내고 대책 마련을 주장했다.

전남도당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전국 최대 쌀 생산지이자 주요 농산물을 생산하고있는 전남의 피해가 가장 클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구당 농업소득은 1995년 1047만 원에서 지난해 1292만원으로 실상 제자리 걸음이었다. 곡물자급률은 29.1%에서 21.7%로 오히려 떨어져 OECD 최저 수준이다”고 반박했다.

또 “농업 위기를 극복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개도국 지위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안정과 대규모 자본의 농산물 유통시장 장악 등 농업위기를 극복할 전략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전날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도 성명서를 통해 “미국 요구에 따라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은 사대매국 행위에 불과하다”며 지위 포기 방침 철회를 강력 요구했다.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90일 이내 개도국 지위 관련 진전사항을 가져올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미국은 개도국으로 인정할 수 없는 기준으로 4가지를 제시했고, 한국은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