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주기철선생
11월의 독립운동가 주기철선생
by 운영자 2007.11.02
신사참배 거부 운동 전개하다 옥중 순국
국가보훈처(처장 김정복)는 광복회ㆍ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의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한 주기철 선생의 탄신 110주년을 맞이하여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경남 창원에서 출생(1897.11.25~1944.4.21)하여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여 교회의 집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창원군 웅천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0년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 웅천청년운동단(熊川靑年運動團다)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의사(議事)로 선출되기도 했다.
1940년 7월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또다시 피체되어 실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조규봉 기자 ckb@icross.co.kr ]
선생은 경남 창원에서 출생(1897.11.25~1944.4.21)하여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여 교회의 집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창원군 웅천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0년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 웅천청년운동단(熊川靑年運動團다)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의사(議事)로 선출되기도 했다.
1940년 7월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또다시 피체되어 실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조규봉 기자 ckb@icross.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