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글날 569돌 특집 인터뷰> 광양 초등학력인정반 “한글, 세상 비춰준 태양”

<한글날 569돌 특집 인터뷰> 광양 초등학력인정반 “한글, 세상 비춰준 태양”

by 운영자 2015.10.08

가정형편·가부장적 사고 이유로 배움의 기회 놓쳐
사랑·감사의 마음 글로 전할 수 있어 ‘행복’


내일(9일)은 한글창제 569돌을 맞는 한글날. 이날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고, 우리 글자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되새겨보자는 뜻에서 제정된 국경일이다.

광양노인복지관 초등학력(졸업)인정반 어르신 30명은 이러한 한글날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다.

“한글은 내게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태양이니까.”

70~80대 어르신들로 이뤄진 초등학력인정반의 반장 백본심(74·여) 씨는 위축되고 답답했던 삶에 글이 한 줄기 빛이 돼줬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은행이나 읍사무소에 가서 일을 볼 때면 괜히 죄 지은 것도 없이 위축되곤 했어. 길을 찾더라도 글을 모르니 여기가 거기가 맞는지 알 수가 있나.”

한글을 몰라 겪었던 서러움은 백 씨를 시작으로, 교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나는 시장에서 45년간 장사를 했어. 근데 글을 모르니까 장부를 못 적어서 외상값도 제대로 못 받았지.”

이외에도 “딸을 따라 교회에 갔지만 글을 몰라 찬송도 못 부르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는 등 한글 공부가 절실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이어졌다.

어르신들의 한글 공부가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당시 한국사회의 문화·역사적 배경과도 맞물린다.

일제시대 보급대 징집, 여순사건 등 아픔의 시대를 고스란히 겪었던 어르신들에게 삶은 그 자체로 전쟁터였고, 글을 배울 여유 또한 없었다고 한다.

또, 운 좋게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해도 ‘여자는 글을 배우면 안된다’는 가부장적 관념 때문에 배움을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글을 배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꿈’.

때문에 일흔이 넘어 시작한 한글 공부가 아무리 어렵고 힘겨워도 포기는 없다.

“받침은 늘 헷갈리고 어려워. ‘ㄳ’, ‘ㄺ’ 같은 겹받침 낱말이나 ‘ㄲ’ 같은 쌍받침은 특히.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말로는 쑥스러워 못했고, 글로는 쓸 수 없어 마음에만 담았던 말들.

글을 배운 뒤로 처음, 이 말들을 투박한 글씨로 써내려가며 어느 때보다도 감격스러운 마음이었다고 어르신들은 말한다.

한글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아는 이들에게, 한글은 태양이자 축복, 용기이자 자유다.

지난 2년간 광양노인복지관 초등학력인정반을 지도해온 송봉애(53·여) 강사는 “이제 어르신들은 한글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시와 수필까지 창작하고 계시다”면서 “한글을 통해 새롭게 꿈을 꾸기 시작하셨다”고 말했다.

[순천광양교차로 / 이보람 기자 shr55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