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572돌 한글날’ 인터뷰 - 김순자씨

‘572돌 한글날’ 인터뷰 - 김순자씨

by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 2018.10.10

“글 배우고픈 어르신들께 평생 밀알 되고파”
순천시 한글작문교실 강사로 13년째 활동
어르신 제자 통해 글의 소중함·가치 되새겨

“어르신들이 글을 몰라 겪은 설움들을 듣노라면 가슴이 미어져요. 그 분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말씀하시죠.”

순천시 성인문해교육 ‘한글작문교실’과 ‘초등학력 인정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순자(56·사진)씨는 어르신 제자들을 통해 한글의 소중함과 가치를 되새기곤 한다고 말한다.

‘문해교육’은 기초능력이 부족해 가정이나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자 해득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

사회복지를 공부한 김씨는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았고, 순천시가 한글작문교실 운영을 시작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문해교육 강사로 13년째 활동해오고 있다.

“현재는 순천시 문화건강센터 평생학습관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첫 수업은 황전면 미초마을이었어요. 낮에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위해 밤에 수업을 해야 하는데, 밤길에 시골마을까지 가서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어르신 대부분이 ‘배우지 못한 한(恨)’을 오랜 시간 가슴에 안고 살아온 만큼 처음에는 공부보다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글을 모르니 늘 남 앞에 나서기가 두렵고 기가 죽어있었다고들 하셨어요. 특히 손주들이 벽에 붙은 글자를 물어보거나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면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며 눈물을 흘리셨죠.”

어르신들이 ‘글을 깨우치게 해달라’며 간절히 내민 손을 맞잡으며 그녀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기초가 없는 어르신들은 ‘자음’과 ‘모음’을 떼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수십 번을 읽고 써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이에 김씨는 어르신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자음’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글자와 모양이 비슷한 사물을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가르쳤다. 가령 ‘ㄴ’은 국자, ‘ㅁ’은 두부모, ‘ㅎ’은 모자 쓴 것으로 연결 지어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제법 효과를 거뒀고, 3년 과정인 한글작문교실(기초반) 과정을 마칠 무렵 어르신들에게는 행복한 변화가 찾아왔다.

혼자서도 길을 찾거나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가능해졌고, 은행 업무 보기와 가족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 보내기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김씨는 특히 기억에 남는 제자로 권정자(87) 어르신을 꼽았다.

“처음 인연을 맺은 13년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으셨는데도 결석 한번 없으셨어요. 이후 ‘성인 문해교육 골든벨’ 대회에서 우승까지 하셨죠. 배움에 대한 열정 덕분인지 건강도 회복하셔서 ‘초등학력 인정반’을 거쳐 현재는 ‘중등학력 인정반’에서 공부하고 계시고요.”

아울러 순천시의 ‘내 인생 그림일기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반 어르신 스무 명이 준 감동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그림일기는 그림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며, 내년 봄에는 뉴욕에서 전시회도 갖게 된다.

김순자씨는 “배움의 기회를 놓치셨던 분들이 공부를 통해 더욱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면서 “배움의 열정을 가진 그런 분들에게 평생 밀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