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569돌 한글날 특집> 순천생협의원 박인근 원장

<569돌 한글날 특집> 순천생협의원 박인근 원장

by 운영자 2015.10.08

우리말 우리글 살려 쓰는 의사선생님

Vital Sign → 숨티, 모소성낭종 → 털둥지물혹
외래어 의학용어 대신 의료진·환자 모두 쉬운‘한글’로
30여년 전 시작 … “우리말글 소중함 날마다 깨달아”
“바이탈 체크했어?”“다낭성난소증후군은 가임기 여성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내분비질환입니다.”

의학드라마에서, 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오는 9일은 569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줄임말과 합성어, 은어 등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은 한글의 홍수 속에 쉽고 바른 우리말과 글을 살려 쓰는 의사선생님이 있다.

순천생협의원 박인근 원장.

박 원장은 진료기록지와 수술기록지 등 병원 내 서류를 영어나 한문 일색인 의료용어 대신 우리말과 글로 풀어 쓴다. 환자에게 하는 병에 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이 일의 시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지던트 시절에는 수술기록지 같은 것을 전부 영어로 쓰라고 하는 훈련이 있었어요. 전 그게 아주 못마땅했어요. 수술기록지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모두가 수술의 흐름 등 전반을 알도록 적은 것인데, 허점투성이 영어로 어떻게 환자와 수술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겠어요?”

박 원장은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것이 병원”이라며 “당연히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는 말로 써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후 박 원장은 지금까지 어려운 의학용어를 쉬운 우리말과 글로 ‘올바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의료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자주 쓰는 의료용어 중 하나가 V/S, Vital Sign이다. 혈압, 맥박수, 호흡수, 체온을 V/S라고 하고, 진료기록지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표시된다. 한자어로 활력징후 또는 생체징후라고도 쓰긴 하지만 더 어색하기도 하고 우리말이 아닌 것 같기는 매 한가지다. 오래 전부터 V/S를 순 우리말로 바꾸고 싶었다.

‘숨티’.
내 맘대로 만들고 써 보니 느낌이 좋다. ‘사람이나 동물이 숨을 쉬며 살아있는 힘’을 뜻하는 목숨의 ‘숨’과 ‘승현이가 주희 좋아하는 티를 심하게 내더니….’ 할 때 티나다의 ‘티’를 붙여 만든 말이다.

목숨이 붙어 있다면 살아있는 숨티가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숨티는 잴 수 없을 것이다.>

박 원장이 지난해 한글날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다음 ‘아름이네서 얘기 나누기’)에 쓴 글이다.

그는 ‘숨티’를 만들어내고 회진을 돌며 진료기록지에 ‘8시간마다 숨티 재세요’라고 썼다. 그러면서 바/이/탈/사/인 다섯 음절에 비해 숨/티 두 음절은 쓰기도, 말하기도 더 수월하다며 흐뭇해했다.

처음 영어나 한자로 배운 의료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일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의료진 사이에서, 그리고 환자와도 편하고 쉽게 이야기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우리말과 글을 아끼라는 말이 진짜 꽁꽁 숨겨두라는 것이 아니에요. 자주 그리고 그대로 바르게 쓰라는 말이에요.”

“의료용어를 바꾸며 저절로 우리말글 공부가 됐다”는 박 원장은 우리 말과 글을‘아낄 것’을 강조한다.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