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역사를 더듬다> 옥천서원

역사를 더듬다> 옥천서원

by 운영자 2016.09.23

호남 사림의 정신적 구심점 … 전라도 최초 사액서원
‘한훤당 김굉필’ 학덕 추모 ‘전남문화재자료 제4호’
순천 원도심에는 천년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지역문화 유산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순천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지방교육을 담당하고, 호남지역 사림(士林,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하던 학자 및 문인)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 곳이 있다.

바로, 옥천서원(玉川書院)이다.
이름처럼 옥천변(순천시 임청대길 18)에 자리한 ‘옥천서원’은 어쩌면 그저 오래된 작은 집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시대 왕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아 ‘옥천’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은 전라도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서원은 학문 연구와 선현의 제사를 위해 조선 중기 이후 사림에 의해 향촌에 설립된 사설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 기구. 향교가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학교’인 셈이다.
특히, 옥천서원은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 일파로 몰려 유배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 ~ 1504)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명종 19년(1564년)에 순천 부사 이정이 창건했다.처음 이름은 경현당이라고 지어졌으나 한훤당 선생의 신위를 모실 제실로 명종 20년(1565년)에 ‘옥천정사’라 명명 했다. 이후 순천부사를 지낸 김계의 상소로 선조 1년(1568년)에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서 소실된 것을 1604년에 유림들의 헌성금으로 고쳐지었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없어졌지만 1928년 유림들이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1984년 2월 9일)된 이곳의 관리 주체는 현재 순천향교이며, 문화재관리 측면에서는 순천시청 문화재과 소관에 있다.

또한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문화재를 보존해나가기 위한, 문화재청 주관의 민관협력 운동 ‘1문화재 1지킴이’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옥천서원 문화재지킴이 퇴직교원 송병관(64·남)씨는 대학원 시절 퇴계와 율곡의 교육 사상을 비교 연구하던 중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사상에 매료된 것을 인연으로 교사 재직 당시인 2004년부터 현재까지 10년 넘게 지킴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송씨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정암 조광조에게 학문을 전한 대학자이며 조선 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라며 “무오사화에 연루돼 순천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참형을 당하셨다. 스스로를 ‘소학동자’로 칭할 만큼 생활 속에서 ‘소학’을 실천했던 선생은 죽음마저도 소학의 가르침에 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옥천서원은 이러한 김굉필 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했던 곳으로, 오늘날 전문대학쯤의 교육기관에 해당 된다”며 “유학의 본산으로서 우리 고장 순천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곳이기도 한 이곳이 관리의 어려움으로 출입문이 잠겨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상근 문화재지킴이 배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옥천서원 오른편에는 순천에서 유배생활을 보냈던 한훤당 김굉필과 매계 조위 선생의 선비정신을 기리는 비석 ‘순천 임청대(전남유형문화재 제77호)’가 자리하고 있다. 비석에는 퇴계 이황의 친필로 ‘臨淸臺(임청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옥천서원 입구인 경현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집의당, 내삼문 그리고 사당인 옥천사가 있으며, 내삼문 앞에는 호남 사림의 정신적 기지(基址)로서의 옥천서원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옥천서원 묘정비(1760년 건립)’가 있다.

[순천광양교차로 /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