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희망이 찾아와 주겠지요?”
“금세, 희망이 찾아와 주겠지요?”
by 운영자 2016.12.09
순천 중앙동 꿈의정원 ‘은행나무와 사슴, 희망이 이야기’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외로이 희망을 기다리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순천시 중앙동 주민센터 인근 꿈의정원, 잎을 털어낸 앙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그 주인공.
100살이 넘은 은행나무는 ‘사슴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줄기 끝과 가지를 잇는 부분에 사슴의 기다란 얼굴과 뿔이 새겨져 있기 때문.
은행나무에 서린 사슴은 한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50년이 넘도록 희망을 기다린다.
중앙동은 중앙동바르게살기위원회와 함께 올해 순천시도시재생 공모에 응모, 사슴나무에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은행나무를 중앙동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은행나무와 사슴, 희망이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설명 판을 세워두고 ‘공감 사연 만들기’를 진행 중이다.
100살이 넘은 은행나무는 ‘사슴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줄기 끝과 가지를 잇는 부분에 사슴의 기다란 얼굴과 뿔이 새겨져 있기 때문.
은행나무에 서린 사슴은 한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50년이 넘도록 희망을 기다린다.
중앙동은 중앙동바르게살기위원회와 함께 올해 순천시도시재생 공모에 응모, 사슴나무에 이야기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은행나무를 중앙동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은행나무와 사슴, 희망이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설명 판을 세워두고 ‘공감 사연 만들기’를 진행 중이다.
‘사슴나무’가 있는 꿈의정원은 일제강점기,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유명한 식당이었다.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던 이곳은 1945년 해방이 되자 더 이상 사람들이 찾는 쓸쓸한 곳으로 변했다.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눠져 총부리를 겨누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고, 고 유동춘 선생은 이 자리에 고아원 ‘애린원’을 지었다.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로 다시 북적였다.
지금은 고아원 담장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은행나무는 고아원이 생기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고아원에 살던 7살 ‘희망이’는 가족을 잃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늘 혼자 겉돌던 아이였다.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눠져 총부리를 겨누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고, 고 유동춘 선생은 이 자리에 고아원 ‘애린원’을 지었다.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로 다시 북적였다.
지금은 고아원 담장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은행나무는 고아원이 생기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고아원에 살던 7살 ‘희망이’는 가족을 잃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늘 혼자 겉돌던 아이였다.
희망이의 유일한 친구는 희망이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묵묵한 은행나무 한 그루 뿐.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유동춘 선생은 희망이에게 사슴 한 마리를 선물해 희망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줬다.
오래도록 우정을 나눈 희망이와 사슴, 은행나무.
희망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새 고아원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됐다. 아쉬운 이별 끝 ‘꼭 다시 올게’ 약속했던 희망이는 이후 다시는 사슴과 은행나무를 찾지 않았다.
희망이 사라진 사슴은 희망이를 그리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게 되고 어느덧 은행나무에는 사슴의 얼굴이 돋아나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yurial78@hanmail.net]
오래도록 우정을 나눈 희망이와 사슴, 은행나무.
희망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새 고아원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됐다. 아쉬운 이별 끝 ‘꼭 다시 올게’ 약속했던 희망이는 이후 다시는 사슴과 은행나무를 찾지 않았다.
희망이 사라진 사슴은 희망이를 그리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게 되고 어느덧 은행나무에는 사슴의 얼굴이 돋아나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yurial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