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6.25전쟁 68주년 특집] 김일원 6.25참전유공자회 순천지회장

[6.25전쟁 68주년 특집] 김일원 6.25참전유공자회 순천지회장

by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 2018.06.25

“통일 향한 발걸음 위해 마음 모아야”
“그 당시에 북한 사람들한테 고문도 당했고, 죽을 뻔도 했지만 지금까지 미워해서는 안 되지요. 그것은 시대가 그런 것이니까 ……. 후손들, 미래를 생각해야죠.”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일원(88·사진) 6.25참전국가유공자회 순천지회장은 북한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대신 평화통일을 이야기한다.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다.

오늘(25일)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8년이 됐지만, 참혹한 전쟁의 기억은 김 지회장의 몸과 마음 곳곳에 남아있다.
“그날을 떠올리면 기가 막히지요. 그야말로 비참합니다.”

순천 별량면이 고향인 김 지회장은 열아홉에 전남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었던 그 당시 지방경찰관으로 근무하다 후퇴를 하지 못해 붙잡히고 말았다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홀로 계셨는데, 독자인 아들이 그렇게 붙잡혀 간 거예요.”

북한 정치보위부에 끌려간 그는 목숨을 위협받으며 갖은 고문을 당했다.

이후 광주형무소(교화소)에 수감돼 있다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여파로 같은 해 9월 28일 살아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전쟁 통에 돌아가신 뒤였다.

전쟁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꿈도 앗아갔다. 경찰로 복귀했지만 고문으로 몸 이곳저곳이 망가진 탓에 이전과 같이 일할 수는 없었다.

“전임지가 아닌 광주기동대로 편입이 됐는데 고문후유증으로 어깨와 무릎이 망가져서 팔 다리가 말을 안 듣는 거예요. 일을 하는 데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죠. 결국 사직서를 냈어요.”

이후에는 순천 예비사단에 들어갔고 군에 현역으로 편입돼 군 복무를 했다. 전역 후에는 지금의 예비군 같은 ‘민병대’ 교관을 거쳐 교육청, 체신청(현 우체국) 등에서 일했다.

전쟁으로 많은 아픔을 겪은 김 지회장은 무엇보다 ‘평화 통일’에 대한 바람을 힘주어 말한다.

“일제강점기 36년간 노예생활을 하다시피 살다 같이 해방이 됐는데, 그런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통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그것이 원입니다.”

특히, 지난 12일 북·미정상회담은 통일을 향한 첫 걸음으로, 이 걸음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김 지회장은 “통일을 통해 이북 동포들도 인권을 보장받고 경제적으로도 발전돼 남·북 구분 없이 평화적으로 잘 살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