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획연재] 청년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③박현우 대표

[기획연재] 청년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③박현우 대표

by 이보람 기자 shr5525@hanmail.net 2019.06.03

아내 고향 광양서 ‘애호박’과 울고 웃은 4년
장인·장모님께 농사 배워 ‘창업농’ ... “땅의 정직함 경험”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적응이 안 되더니 지금은 알람을 안 맞춰도 저절로 눈이 떠져요. 해가 뜨거울 때는 일을 못 하는 것을 아니까 눈이 번쩍 떠지는 거죠.”

광양 진상면에서 아내와 함께 애호박 농장을 운영 중인 박현우(40·사진) 대표는 농사에 뛰어든 지 4년 만에 몸도 마음도 농사꾼이 다 됐다고 말한다.

대구가 고향인 박현우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IMF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대학 진학 대신 군 입대를 택했다. 제대 이후 방송국 카메라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광양제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시기 지인의 소개로 아내 홍영리씨를 만났다.

“협력업체에서 5~6년 정도 일하다 포스코 계열사에 들어갔는데, 합병 소식으로 정직원이 될 가능성도 있었어요. 하지만 2015년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말경 회사를 그만두고 농사꾼의 길을 걸었죠.”

그가 애호박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데는 장인·장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두 분이 광양에서 40년간 애호박 농사를 지으셔서 쉽게 배울 수 있었고, 한창 시세가 좋았던 시기라 수익도 제법 많다고 들었죠.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두 분께 어깨 너머로 농사를 배우며 6개월 정도 준비 기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그 해 12월 농사에 뛰어든 그는 현재 진상면 지원리와 청암리에서 총 23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짓고 애호박을 재배하고 있다.

애호박 농사는 9월말에서 10월 초 정식(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일)을 하면 한 달 뒤 열매가 하나씩 열리고, 출하는 11월 중순~말경 시작해 6월에 마무리 된다.

3교대 근무로 인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박 대표는 농사꾼이 된 지금은 월요병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또, 땀의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며 일에 동기 부여가 되고 은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농사를 짓다보면 무거운 것도 들고, 더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허리 숙여 일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점이야 많지만 수확시기가 되면 그 간 흘린 땀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라는 것.
광양 진상면의 비옥한 토질과 농부의 성실한 땀으로 빚어진 이곳 애호박은 표면이 단단하고 단 맛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신선 채소의 특성상 소매 형태로 인터넷 등을 통한 판매가 불가해 이는 농협에서 전량 수급해 판매된다.

애호박 시세가 비교적 높았던 지난해의 경우, 박 대표 농가는 연매출 1억 2000만 원(2017년 11월~2018년 6월 출하 기준)을 기록했다.

그는 농사꾼을 꿈꾸는 예비 농업인들에게 “농사라는 게 실패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분들은 일어서지만 포기하는 분들도 더러 보게 된다”며 “실패 확률을 낮추려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작물과 재배방식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현우 대표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은 농사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 한다”며 “항상 다음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현재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는 점이 농사의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이어 “갈수록 높아지는 기온에 맞춰 향후에는 열대작물 등 재배 작물을 다양화 할 계획도 갖고 있다”며 “지금처럼 농사를 지으며 아내, 아이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