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광양 자랑 50선 ③ 박물관
순천·광양 자랑 50선 ③ 박물관
by 운영자 2013.03.07

▲사진설명- 장도명인 중요무형문화재 60호 박용기 선생
“순천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뭐야?” “광양에서 놓치면 아까운 명소는 어디지?”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가 막힌’ 것을 내놓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터다.
교차로신문사는 오는 4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그 난감한 질문에 도움을 줄 ‘순천광양 자랑 50선’을 엄선해 연재한다. 50선의 순서는 계절과 시기를 고려해 선정했다.
면면이 이어온 전통이 살아숨쉬는 곳
광양장도박물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박물관이라고 하면 ‘죽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에 있는 것들은 모두 네모난 유리관에 갇힌 박제 같아 영 재미가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억지춘향으로 박물관을 찾지만 보통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경우가 대다수.
하지만 순천과 광양에 각각 하나씩 있는 박물관은 죽어있지 않고 ‘펄펄’ 살아있다. 눈으로만 삐쭉 구경하는 박물관이 아닌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하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 광양장도박물관
광양장도박물관은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은장도를 떠올리는 작은 칼 장도(粧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장도는 많은 이들이 옛 여인네들이 호신용으로 가슴에 품었던 은장도만을 떠올리지만 장도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일컫는 말로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몸에 지녔던 대표적인 호신용, 장식용 칼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가슴에 품었던 은장도로, 치장을 위한 노리개로 사용됐고 남성들에는 허리춤에 차는 패도로, 당쟁이 심할 때 칼 옆에 달린 은젓가락으로 음식에 든 독을 판별했던 첨자도로 사용됐다.
장도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도암(刀庵) 박용기 선생의 혼이 담긴 곳.
박용기 선생은 장도 기술 스승인 장익성 집안으로 시집간 고종누나 덕에 14살 되던 해인 1944년부터 장익성 문하에서 장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 기초만 익히면 나머지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
갖은 생활고와 칼을 다루며 입는 상처, 우리 것에 대한 천대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장도 만들기에 손을 놓지 않았던 박용기 선생은 지난 1978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또 지난해 12월 세계 각국에 우리 장도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광양장도전수관을 통해 전통공예 기술의 보급과 확산에 주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장도박물관은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다.
그 첫 번째 까닭은 박용기 선생의 뒤를 이어 아들 박종군 관장이 대를 이어 장도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 2011년 12월 박 관장은 부친인 박용기 선생과 더불어 제2세대 중요무형문화재로 대를 이어받게 돼 더 특별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3대 박남중씨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60호 장도장 3대 이수자로 선정, 장도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까닭은 그저 눈으로만 보고 끝나는 곳이 아닌 실제 장도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도를 비롯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통부채 만들기, 칠보공예 체험, 장승 만들기, 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05년 개관한 장도박물관은 현재 장도를 아껴는 이들의 문화공간으로, 조상의 정신을 잇는 인성공간으로, 학습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순천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뭐야?” “광양에서 놓치면 아까운 명소는 어디지?”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가 막힌’ 것을 내놓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터다.
교차로신문사는 오는 4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그 난감한 질문에 도움을 줄 ‘순천광양 자랑 50선’을 엄선해 연재한다. 50선의 순서는 계절과 시기를 고려해 선정했다.
면면이 이어온 전통이 살아숨쉬는 곳
광양장도박물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박물관이라고 하면 ‘죽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에 있는 것들은 모두 네모난 유리관에 갇힌 박제 같아 영 재미가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억지춘향으로 박물관을 찾지만 보통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경우가 대다수.
하지만 순천과 광양에 각각 하나씩 있는 박물관은 죽어있지 않고 ‘펄펄’ 살아있다. 눈으로만 삐쭉 구경하는 박물관이 아닌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하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 광양장도박물관
광양장도박물관은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은장도를 떠올리는 작은 칼 장도(粧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장도는 많은 이들이 옛 여인네들이 호신용으로 가슴에 품었던 은장도만을 떠올리지만 장도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일컫는 말로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몸에 지녔던 대표적인 호신용, 장식용 칼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가슴에 품었던 은장도로, 치장을 위한 노리개로 사용됐고 남성들에는 허리춤에 차는 패도로, 당쟁이 심할 때 칼 옆에 달린 은젓가락으로 음식에 든 독을 판별했던 첨자도로 사용됐다.
장도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도암(刀庵) 박용기 선생의 혼이 담긴 곳.
박용기 선생은 장도 기술 스승인 장익성 집안으로 시집간 고종누나 덕에 14살 되던 해인 1944년부터 장익성 문하에서 장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 기초만 익히면 나머지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
갖은 생활고와 칼을 다루며 입는 상처, 우리 것에 대한 천대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장도 만들기에 손을 놓지 않았던 박용기 선생은 지난 1978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또 지난해 12월 세계 각국에 우리 장도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광양장도전수관을 통해 전통공예 기술의 보급과 확산에 주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장도박물관은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다.
그 첫 번째 까닭은 박용기 선생의 뒤를 이어 아들 박종군 관장이 대를 이어 장도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 2011년 12월 박 관장은 부친인 박용기 선생과 더불어 제2세대 중요무형문화재로 대를 이어받게 돼 더 특별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3대 박남중씨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60호 장도장 3대 이수자로 선정, 장도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까닭은 그저 눈으로만 보고 끝나는 곳이 아닌 실제 장도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도를 비롯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전통부채 만들기, 칠보공예 체험, 장승 만들기, 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05년 개관한 장도박물관은 현재 장도를 아껴는 이들의 문화공간으로, 조상의 정신을 잇는 인성공간으로, 학습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설명-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 내 전시작품
□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600년 전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 내에 자리하고 있다.
2011년 세워진 이곳은 평생 우리 것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 한창기(1936~1997) 선생의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
1936년 벌교에서 태어난 한 선생은 1976년 월간 문화종합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해왔다.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문헌 ‘용비어천가’에서 제호를 따왔으며 한글과 한자 혼용, 세로쓰기 방식이던 당시 신문이나 잡지와 달리 한글 전용, 가로쓰기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1980년 8월 강제 폐간됐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한다”던 한 선생은 1997년 간암으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 문화재를 사랑하고 수집하는데 애썼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한 선생의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집결된 곳. 박물관은 선생이 만든 잡지의 이름을 따 각각 뿌리 깊은 나무(상설 전시실), 샘이 깊은 물(기획 전시실), 배움나무(세미나실)로 나뉜다.
선사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 6500여 점 중 8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별 모양 돌도끼,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문화재급 전시물이 눈에 띈다.
또 서까래의 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끼우던 서까래막새처럼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박물관 옆의 한옥은 1920년대에 지어진 백경 김무규(1908~1994)의 고택으로 구례에서 옮겨왔다. 전형적인 양반 상류 주택으로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됐다.
백경은 구례향제줄풍류 단소 예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83호였다. 이 집은 영화 ‘서편제’에 주인공 ‘송화’가 눈이 먼 뒤 아버지 ‘유봉’과 함께 머무르는 곳으로 등장했다
한편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3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기자기 작은 박물관 여행지’로 선정됐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9630@hanmail.net]
□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600년 전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 내에 자리하고 있다.
2011년 세워진 이곳은 평생 우리 것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 한창기(1936~1997) 선생의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
1936년 벌교에서 태어난 한 선생은 1976년 월간 문화종합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해왔다.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문헌 ‘용비어천가’에서 제호를 따왔으며 한글과 한자 혼용, 세로쓰기 방식이던 당시 신문이나 잡지와 달리 한글 전용, 가로쓰기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1980년 8월 강제 폐간됐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한다”던 한 선생은 1997년 간암으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 문화재를 사랑하고 수집하는데 애썼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한 선생의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집결된 곳. 박물관은 선생이 만든 잡지의 이름을 따 각각 뿌리 깊은 나무(상설 전시실), 샘이 깊은 물(기획 전시실), 배움나무(세미나실)로 나뉜다.
선사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 6500여 점 중 8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별 모양 돌도끼,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문화재급 전시물이 눈에 띈다.
또 서까래의 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끼우던 서까래막새처럼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박물관 옆의 한옥은 1920년대에 지어진 백경 김무규(1908~1994)의 고택으로 구례에서 옮겨왔다. 전형적인 양반 상류 주택으로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됐다.
백경은 구례향제줄풍류 단소 예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83호였다. 이 집은 영화 ‘서편제’에 주인공 ‘송화’가 눈이 먼 뒤 아버지 ‘유봉’과 함께 머무르는 곳으로 등장했다
한편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3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기자기 작은 박물관 여행지’로 선정됐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 cmh96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