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광양 자랑 50선 ④ 공원
순천·광양 자랑 50선 ④ 공원
by 운영자 2013.03.21
“순천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뭐야?” “광양에서 놓치면 아까운 명소는 어디지?”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가 막힌’ 것을 내놓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터다. 교차로신문사는 오는 4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그 난감한 질문에 도움을 줄 ‘순천광양 자랑 50선’을 엄선해 연재한다. 50선의 순서는 계절과 시기를 고려해 선정했다.
50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광양읍‘유당공원’
광양읍의 유당공원의 기본적인 휴식의 공간에 역사적인 의미까지 더해진 곳.
50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광양읍‘유당공원’
광양읍의 유당공원의 기본적인 휴식의 공간에 역사적인 의미까지 더해진 곳.

광양시 광양읍의 유당(柳塘)공원은 조선 명조(재위 1545~1576) 때 지어진 곳으로, 1547년 당시 현감이었던 박세후가 만들었다.
유당공원은 이름 그대로 버들 류(柳)와 연못 당(塘)이 합쳐진 말로 수양버들이 연못가에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유당공원은 처음 휴양의 공간이 아니었다. 광양읍성을 축조하고 멀리 바다 쪽에서 왜구들이 성 안을 볼 수 없도록 나무를 심었던 자리다.
이처럼 공원은 처음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림이었지만 이곳의 지형이 태풍의 상륙지로 바람의 피해가 심각한 곳이었기에 방품림의 구실도 커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고 보존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양읍성은 없지만, 유당공원은 팽나무, 이팝나무와 함께 수양버들은 역사를 이겨내고 남아 오늘날 쉼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이 나무들은 대체로 광양읍성 축조 직후 또는 1547년을 전후해서 심었을 것으로 추정, 적어도 그 수령이 450년이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처음 빼곡하던 나무들은 1910년경 많이 베어져 크게 훼손, 천연기념물 제235호인 광양읍수와 이팝나무를 비롯해 400~500년 묵은 팽나무, 느티나무 등 고목들만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유당공원은 이름 그대로 버들 류(柳)와 연못 당(塘)이 합쳐진 말로 수양버들이 연못가에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유당공원은 처음 휴양의 공간이 아니었다. 광양읍성을 축조하고 멀리 바다 쪽에서 왜구들이 성 안을 볼 수 없도록 나무를 심었던 자리다.
이처럼 공원은 처음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림이었지만 이곳의 지형이 태풍의 상륙지로 바람의 피해가 심각한 곳이었기에 방품림의 구실도 커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고 보존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양읍성은 없지만, 유당공원은 팽나무, 이팝나무와 함께 수양버들은 역사를 이겨내고 남아 오늘날 쉼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이 나무들은 대체로 광양읍성 축조 직후 또는 1547년을 전후해서 심었을 것으로 추정, 적어도 그 수령이 450년이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처음 빼곡하던 나무들은 1910년경 많이 베어져 크게 훼손, 천연기념물 제235호인 광양읍수와 이팝나무를 비롯해 400~500년 묵은 팽나무, 느티나무 등 고목들만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 가운데 광양읍수와 이팝나무는 1971년 9월 13일 천연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됐다.
높이 17미터, 성인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3.1미터인 이 나무는 크기와 굵기로만 나이를 짐작할 뿐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줄기는 땅에서 2.5미터 된 곳에서 둘로 갈라졌는데 갈라진 부분의 밑 둘레가 각각 2.3미터와 2미터로 성인 남자의 한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굵다.
나무 크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이팝나무 중 네 번째지만 균형 잡힌 모양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중 가장 균형 잡힌 수형으로 꼽힌다.
해마다 5월이면 마치 눈꽃이 내린 듯한 화사한 풍경을 자아내는 나무는 멀리서 꽃무리를 보면 쌀밥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고 부른다.
유당공원에는 아름드리 나무들 뿐만 아니라 비석군도 눈여겨볼 것.
공원의 비석군은 관찰사와 현감, 군수 등을 지낸 15명 인물의 비석이다. 보존 정도는 양호하지만 마모가 많이 진행돼 비문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그 인물들의 재임기간에 대한 기록이 광양읍지에 남아 있어 이것을 토대로 비의 건립연대가 1600년대인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비석군을 통해서도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유당공원의 역사와 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유당공원은 450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 시간만큼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894년 농민전쟁 당시, 김인배를 비롯한 농민군들이 하동, 진주관아를 접수하자 조선 관군과 일본군이 반격해 농민군들이 하동과 광양으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광양읍에 주둔한 김인배와 1000여명의 농민군들이 관군의 공격을 받아 그 가운데 200여명가량이 총살을 당한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 전쟁과 재건의 과정을 거치며 휴식과 보존보다는 노동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로 광양시가 발전하는 동안 유당공원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지금의 모습처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찾는 이들이 많지 않는 곳으로 분리됐다.
그러나 현재 유당공원은 힐링과 휴식의 참의미를 찾고,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우려는 이들이 늘면서 다시 역사 속의, 우리 삶 속의 공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높이 17미터, 성인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3.1미터인 이 나무는 크기와 굵기로만 나이를 짐작할 뿐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줄기는 땅에서 2.5미터 된 곳에서 둘로 갈라졌는데 갈라진 부분의 밑 둘레가 각각 2.3미터와 2미터로 성인 남자의 한품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굵다.
나무 크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이팝나무 중 네 번째지만 균형 잡힌 모양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중 가장 균형 잡힌 수형으로 꼽힌다.
해마다 5월이면 마치 눈꽃이 내린 듯한 화사한 풍경을 자아내는 나무는 멀리서 꽃무리를 보면 쌀밥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고 부른다.
유당공원에는 아름드리 나무들 뿐만 아니라 비석군도 눈여겨볼 것.
공원의 비석군은 관찰사와 현감, 군수 등을 지낸 15명 인물의 비석이다. 보존 정도는 양호하지만 마모가 많이 진행돼 비문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그 인물들의 재임기간에 대한 기록이 광양읍지에 남아 있어 이것을 토대로 비의 건립연대가 1600년대인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비석군을 통해서도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유당공원의 역사와 시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유당공원은 450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 시간만큼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894년 농민전쟁 당시, 김인배를 비롯한 농민군들이 하동, 진주관아를 접수하자 조선 관군과 일본군이 반격해 농민군들이 하동과 광양으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광양읍에 주둔한 김인배와 1000여명의 농민군들이 관군의 공격을 받아 그 가운데 200여명가량이 총살을 당한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 전쟁과 재건의 과정을 거치며 휴식과 보존보다는 노동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로 광양시가 발전하는 동안 유당공원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지금의 모습처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찾는 이들이 많지 않는 곳으로 분리됐다.
그러나 현재 유당공원은 힐링과 휴식의 참의미를 찾고,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우려는 이들이 늘면서 다시 역사 속의, 우리 삶 속의 공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