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화예술인 릴레이 인터뷰②
교차로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화예술인 릴레이 인터뷰②
by 운영자 2014.04.28
시인 허형만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새 떼들 솟아오르고/ 갈대 눕는다/ 대대포구로 떨어지는 해/ 뻘 속을 파고드는데/ 묻지 마라/ 쓸쓸한 저녁의 속내를/ 만월 일어서고/ 별 하나 진다”(‘순천만’전문)
14권의 신작 시집, 5권의 시선집. 대학 강단에서의 30년까지.
지난해 등단 40년을 맞은 허형만(68·사진) 시인은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그의 인생관대로, 교육자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삶을 참 부지런히도 달려왔다.
▶ 오랜 시간을 시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시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나 자신 또는 내 삶을 표현하는 방법이 돼 주는 것이죠.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음악가가 노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 무슨 일이든 고비가 찾아오는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은 어떠셨습니까?
두 가지가 있었죠. 하나는 시대가 주는 고비.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 주는 고비입니다.
5.18 광주항쟁 직후에 ‘흔들리는 차 속에서’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군인들의 검열에 걸렸죠. ‘흔들리는 차가 흔들리는 국가를 말하는 게 아니냐’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말이죠. 그때 작품 회수령도 내리고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서 호출명령도 떨어졌어요.
다행히 작품집필로 구례 천은사에 들어가 있을 때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든 순간은 작품이 안 써질 때죠. 등단 40년에 작품집을 스무 권 가까이 발표하는 동안 고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재능보다는 노력형입니다. 그래서 제게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는 열심히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고요.
▶ 소재에 한계가 있으셨을 텐데 선생님 창작활동의 동력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여행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시간이 나는 대로, 때로는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나죠. 우리 인생 자체가 어차피 여행이듯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시로 옮기면 되는 것 같아요.
▶ 선생님 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시어(시의 언어)를 통해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거나 생명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분이 계신가요?
순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저는 문예부장 이었습니다. 당시 은사셨던 문병란 선생님께서 시인이셨어요.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시를 쓰고 공부하며 시인의 꿈을 키웠고 결국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했어요.
이후 조병화 교수님과 숭실대학교(당시 숭전대학교)에 교수로 계셨던 김현승 시인께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고요.
▶ 선생님처럼 시인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시인을 직업으로 생각하면 힘들어요. 시인은 정신적인 삶의 한 부분이죠. 저는 청소년들이 시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갖고 시를 통해 치유받길 바랍니다.
▶ 시를 배우고픈 분들에게 비법 하나만 전수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에는 늘 3가지 신비가 함께합니다. 첫째는 빛과 소리의 신비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만남의 신비. 꽃을 만나면 꽃에 대한 시가 나오는 것이죠. 마지막은 자비의 신비. 제가 이렇게 존재·언어를 통해 시를 쓰게 된 것은 신의 은총이죠. 여러분께는 앞의 두 가지를 조언해드리고 싶네요.
스스로를 재능 없는 시인이라 자평하며 오늘도 3가지 신비와 함께 노력한다는 그의 모습은 언제든 날아오를 준비가 된 한 마리 새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허형만 시인은 내달 1일 KTV한국정책방송 <인문학열전> 녹화를 앞두고 있다.
* 허형만 시인은 순천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그늘이라는 말’, ‘첫차’ 등 14권의 시집을 펴내며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전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교차로신문사/ 이보람 기자]
14권의 신작 시집, 5권의 시선집. 대학 강단에서의 30년까지.
지난해 등단 40년을 맞은 허형만(68·사진) 시인은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그의 인생관대로, 교육자로서도 시인으로서도 삶을 참 부지런히도 달려왔다.
▶ 오랜 시간을 시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시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나 자신 또는 내 삶을 표현하는 방법이 돼 주는 것이죠.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음악가가 노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 무슨 일이든 고비가 찾아오는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은 어떠셨습니까?
두 가지가 있었죠. 하나는 시대가 주는 고비.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 주는 고비입니다.
5.18 광주항쟁 직후에 ‘흔들리는 차 속에서’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군인들의 검열에 걸렸죠. ‘흔들리는 차가 흔들리는 국가를 말하는 게 아니냐’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말이죠. 그때 작품 회수령도 내리고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서 호출명령도 떨어졌어요.
다행히 작품집필로 구례 천은사에 들어가 있을 때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든 순간은 작품이 안 써질 때죠. 등단 40년에 작품집을 스무 권 가까이 발표하는 동안 고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재능보다는 노력형입니다. 그래서 제게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는 열심히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고요.
▶ 소재에 한계가 있으셨을 텐데 선생님 창작활동의 동력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여행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시간이 나는 대로, 때로는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나죠. 우리 인생 자체가 어차피 여행이듯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시로 옮기면 되는 것 같아요.
▶ 선생님 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시어(시의 언어)를 통해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거나 생명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분이 계신가요?
순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저는 문예부장 이었습니다. 당시 은사셨던 문병란 선생님께서 시인이셨어요.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시를 쓰고 공부하며 시인의 꿈을 키웠고 결국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했어요.
이후 조병화 교수님과 숭실대학교(당시 숭전대학교)에 교수로 계셨던 김현승 시인께 많은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고요.
▶ 선생님처럼 시인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시인을 직업으로 생각하면 힘들어요. 시인은 정신적인 삶의 한 부분이죠. 저는 청소년들이 시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갖고 시를 통해 치유받길 바랍니다.
▶ 시를 배우고픈 분들에게 비법 하나만 전수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에는 늘 3가지 신비가 함께합니다. 첫째는 빛과 소리의 신비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만남의 신비. 꽃을 만나면 꽃에 대한 시가 나오는 것이죠. 마지막은 자비의 신비. 제가 이렇게 존재·언어를 통해 시를 쓰게 된 것은 신의 은총이죠. 여러분께는 앞의 두 가지를 조언해드리고 싶네요.
스스로를 재능 없는 시인이라 자평하며 오늘도 3가지 신비와 함께 노력한다는 그의 모습은 언제든 날아오를 준비가 된 한 마리 새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허형만 시인은 내달 1일 KTV한국정책방송 <인문학열전> 녹화를 앞두고 있다.
* 허형만 시인은 순천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그늘이라는 말’, ‘첫차’ 등 14권의 시집을 펴내며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월간문학동리상, 전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교차로신문사/ 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