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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환한 웃음만큼 어머니의 따뜻한 품만큼, 곡성 겸면 목화꽃

누이의 환한 웃음만큼 어머니의 따뜻한 품만큼, 곡성 겸면 목화꽃

by 운영자 2005.08.19

그 옛날 곱게 기른 딸을 시집보내던 날,
빠듯한 형편 때문에 변변한 혼수 하나 못해줘도 어머니는 자신 손으로 직접 지은 두툼하고
묵직한 솜이불 한 채를 빼놓지 않으셨다.
겨우내 솜보다 더 따듯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했던 솜이불의 그 묵직함은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사진설명-누이의 해맑은 웃음처럼 곱게 핀 목화꽃]

목화꽃길 따라 추억이 방울 방울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 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 솜 활끈 튕기면 피어나는 솜으로 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

-오탁번 중에서-

성군 겸면 천 목화공원을 찾아가는 길, 길가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볍게 춤을 춘다. 한가로운 잠자리도 푸른 하늘을 난다. 키다리 코스모스도 하늘을 향해 제 모양새를 뽐낸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여름 끝자락이다.

서순천IC를 빠져나와 광주 방면으로 40분쯤 내달리다 보면 곡성 표지판이 나온다.
서순천IC를 빠져나와 광주 방면으로 40분쯤 내달리다 보면 곡성 표지판이 나온다. 그 표지판을 따라 곡성IC 나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갈림길에서 왼쪽 광주 방향으로 5km 정도 정겨운 국도를 달리다 보면 오른편으로 목화공원이 보인다.
변변한 주차장이 없으니 도로 갓길에 주차를 해두고 천천히 걸어 목화공원으로 향한다.

시원한 내가 흐르는 길 양 옆으로 온갖 우리 농작물과 우리 꽃이 줄지어 심어 있다.
창포, 갓끈동부, 조롱박과 수세미, 키가 훌쩍 큰 옥수수와 수수, 조와 기장, 귀리, 메밀, 고구마, 생강, 하늘고추, 자소, 홍화 등의 농작물에서부터 도라지, 구절초, 쑥부쟁이 등 우리꽃까지! 옛날 산에 들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꽃과 농작물들이 끝없이 심어진 둑방길은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추억을 곱○○○을 수 있는 ‘추억의 길’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우리 풀꽃과 농작물을 만나는 ‘자연공부 길’이 된다.

6.5km의 강둑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편으로 좁다란 길이 나온다. 찰방찰방 강물이 좁다란 길을 메웠다.
신을 벗고 걸으니 땀을 식히기 딱 좋게 시원하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 몇몇은 바지를 걷어 부치고 물고기를 잡느라 소란을 떤다. 물이 맑아 작은 고기들이 꽤 많이 잡혀 있다.
언뜻 봐도 음료수병 안으로 예닐곱 마리가 헤엄을 친다.

시원한 강물에 발을 적시고 목화공원으로 향한다. 양 옆으로 길게 펼쳐진 목화꽃 단지에는 새색시마냥 수줍게 막 피어오른 하얀 목화꽃에서부터 은은한 분홍빛 자태를 뽐내는 분홍 목화꽃, 이제 뚝뚝 떨어져 목화솜을 피워내기만 하면 되는 자주빛의 목화꽃까지, 목화꽃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다. 합성솜 때문에 밀려난 천연목화솜, 그래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던 그 옛날의 목화꽃을 보니 가슴이 설렌다.

‘목화’ 하면 누구나 문익점이라는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에 갔다 어렵사리 붓 대롱 속에 목화씨를 숨겨 들여온 그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제종자스파이’인 셈이지만 추위에 떨던 온 백성의 몸과 마음을 녹인 그의 공은 여느 임금 못지않은 것이다.

그로부터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몸을 감싸는 옷이 돼 온 귀한 농작물이 바로 이 목화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값싼 수입 원면과 화학섬유에 밀려나 재배면적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 1980년대 이후에는 목화밭을 구경하기조차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한 구석을 장식하던 귀한 목화꽃길이 이렇게 십리나 이어진다.

목화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국기봉 모양의 다래가 봉긋 고개를 내민다.
꽃이 지고 달린 것인데 옛날 주전부리가 없던 시절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한 다래는 아이들의 좋은 군것질거리가 돼주었다.
벌어지지 않은 다래를 억지로 벌여보았더니 하얀 솜이 실타래처럼 엮여있다. 햇살에 잘 익어 몽실몽실 구름 같은 목화솜을 피워낼 다래.

곡성군 겸면 천변 목화꽃밭, 이 꽃들 지면서 다래 달리고, 다시 거기에 하얀 솜꽃들 피어날 것이니 다시 찾아올 기약을 해보는 꽃밭이다.

취재 : 최명희 기자

[사진설명]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피었다가 점점 분홍으로 짙어져 자줏빛을 띠는 목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