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10만평 연꽃 향에 취하다

10만평 연꽃 향에 취하다

by 운영자 2005.09.09

무안군 회산 연꽃방죽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심청을 왕비로 탄생시킨 꽃,
더러운 물속에서 피워내는 깨끗한 꽃과 잎으로 불가에서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경계,
깨우침의 상징인 연꽃.
무안 일로읍 복용리의 10만평 연꽃 방죽, 푸른 잎들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밀고 소복소복 핀 백련은 함박눈이 쌓인 듯, 학이 내려앉은 듯 눈이 부시다.


[사진설명-끝을 알 수 없이 드넓게 펼쳐진 연꽃 방죽]

흙탕물에도 물들지 않는 생명의 꽃, 깨달음의 꽃 연꽃

나는 연꽃을 유독 좋아한다.
진흙 속에 피어나면서 더럽혀지지 않으며 깨끗하게씻었으나 요염하지 않다.

줄기 속은 비었으되 겉은 곧으며 덩굴지거나 가지를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멀리서 좋은 눈빛으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지고 놀 만큼 엽신여길 수는 없다. -주염계 중에서-
련을 찾아 무안으로 가는 길은 여타의 여행과 다른 향기가 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떠났던 그간의 여행이 숨이 멎을 듯 강렬한 향을 내뿜었다면 백련을 찾아가는 길은 엄마 품 안에서 나던 은은한 ‘엄마 냄새’ 같다.

서순천IC를 빠져나와 광주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나와 나주·무안 방면 국도를 타고 1시간여쯤 달리면 몽탄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곳부터 회산 연꽃방죽을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길바닥에 대문짝만하게 ‘연꽃’이란 글씨가 쓰여 있기 때문. 그것도 친절하게 화살표와 함께!

연꽃 방죽 입구에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초록 물결에 절로 탄성이 터져나온다. 형형색색의 도시 빛깔에 익숙했던 눈이 푸르른 연잎으로 인해 명쾌해지면서 마음까지 시원스레 뚫리는 것 같다. 초록 연잎 사이로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민 연꽃은 초록 바다에 유유히 내려앉은 학 같다.

회산 연꽃 방죽은 인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물레방아와 연꽃을 더 가까이 보라는 배려가 돋보이는, 방죽 곳곳을 연결하는 나무로 만든 다리 백련교는 수수하고 은은한 연꽃과 참 잘 어울린다. 백련과 조화를 위해 현대식 조형 대신 전통의 것을 활용한 배려가 고맙다.

연꽃은 미시(오후 1~3시)에 꽃이 핀다 하여 미초(未草), 한낮에 핀다하여 자오련(子午蓮)이라고 하는데,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이면 다시 연잎 사이에서 수줍은 듯 피어 피고 지기를 100여 일 동안 반복한다. 특히 백련은 동시에 피었다 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두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꽃대에는 탐스러운 연꽃이 달려 있고, 어느 꽃대에는 벌써 연밥이 가을빛을 띄고 있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인 이곳은 일제시대, 마을 주민이 우연히 구해다 심은 백련 12주가 이 백련방죽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백련을 심은 그날 꿈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그날 심은 백련의 모양과 비슷해 예사롭지 않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그날 이후 정성을 다해 연을 가꾸고 보호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백련교를 걸으며 바람에 너울거리는 연잎과 그 사이에 복스럽게 핀 연꽃을 보고 있는데 까만 것이 느릿느릿 줄기 사이를 오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닭이다.

이름도 생소한 물닭은 환경오염이 심각한 요즘엔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에서는 반가운 물닭도 만날 수 있다. 그 한편으로는 고기떼가 입을 뻐끔거린다.

또한 10만평 규모의 이곳 연꽃 방죽에서는 백련뿐 아니라 홍련, 수련, 어리연, 왜개연 등의 각종 연꽃과 부레옥잠, 물배추, 물창포, 물아카시아, 물양귀비 등 흔하게 보기 힘든 50여종의 수생식물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다. 이곳은 연꽃을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뿐 아니라 수상생물에게도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는가 보다.

연꽃 방죽 한켠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수상유리온실은 세계 각국의 연꽃과 수생식물, 아열대식물 등 200여종을 전시해놓아 관람객들의 눈이 한층 즐겁다.

또 연꽃 방죽 주변에는 연으로 만든 쫄깃하고 영양만점의 연국수, 꽃을 이용해 끓인 향그러운 백련차 등과 담백한 연 아이스크림, 연슬러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눈으로 초록물결의 연잎과 눈송이 같은 연꽃도 보고, 코로 은은한 연꽃 향기도 맡고, 손으로 보드라운 연꽃도 만져보고, 귀로 바람에 일렁이는 연꽃의 향연도 즐겼다면 마지막은 입으로 연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텁텁한 도시 공기에 취한 우리 몸에 은은한 연꽃 향기를 가득 채워보자.

취재 : 최명희 기자

[사진설명]
1. 너울너울 연잎 사이로 핀 백련
2. 꽃잎이 떨어지고 난 후 열리는 열매, 연밥. 벌집처럼 연탄구멍처럼 생긴 곳에 씨가 들어있다.